늦게 까지 정리하다 간신히 눈 붙이고, 잠을 청한다. 고비사막에서 첫 밤이다. 뒤숭숭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거리다 요란한 카톡 소리에 짐이 깬다. 아~ 오늘이 설날이구나. 서울 큰집에서 차례 준비가 다 된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설에 형님 집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 예전에는 상차리고 조상님께 절 했는데, 지금은 예배를 드린다. 예배 마치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새배한다. 집사람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돌린다. 이렇게 새배드리는 것은 처음이다. 타향, 더구나 타국에서 새배라. 이런 건 한참 혈기 왕성할 때 하는 것인데, 다 힘빠진 지금의 전화 새배가 좀 처량하다. 나 하나 욕심 때문에 여러 사람 마음 고생시킨다. 그럭저럭 새배하고 아침거리를 찾아보았다. 울란바타르에서 짐 때문에 먹을 거리를 준비하지 못했다. 몽골 사람들은 차강사르에는 며칠 씩 쉰다. 거리에 열린 가게가 없다. 다행히 쌀 1킬로, 김치 한 봉지가 있다. 그리고 장아찌와 건미역, 김도 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처럼 간단한 요리도 없다. 물 한 대접에 건미역 반 주먹 정도 넣고 10분 정도 끓이다 소금으로 간 맞추면 된다. 제법 근사한 새해 첫 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3일이나 먹어야 하는구나. 이런, 3일씩이나 생일상을 받아야 하다니. 점심 때 쯤 베트남에 가 있는 한선생에게서 카톡으로 새해 인사가 왔다. 이런 푸념을 했더니 다행이란다. 이 기회에 혈압 좀 낮추란다. 이 친구는 생긴 것처럼 마음이 기특하다.
아침을 먹고 있자니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혹시 코워커가 찾아 왔나 하며 문을 열었더니 아이들 몇 명이 문 앞에 있다가 위층으로 휙 도망간다. 친척집을 잘못 찾아왔거니 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또 문을 두드린다. 이번에는 델을 예쁘게 차려 입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 가만히 보니 주머니에 비닐봉지 하나씩 들려 있고, 그 안에 지폐가 들어 있다. 새해 아침에 아이들이 동네 어른들에게 새배하고, 새배 돈 받는 풍습이 여기에도 있구나. 서들러 아이들을 안에 들이고, 빰을 어루만지면서 한국말로 새해 복많이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잔돈 한 장씩 주니 좋아한다.
아이들을 내보내고 좀 있으려니 또 문이 울린다. 몽골 아이들은 참 귀엽다. 핸드폰으로 기념 찰영도 하고, 새배 돈을 주어 보냈다. 몇 팀을 치르니 잔돈이 바닥 났다. 이 다음에 오는 애들은 큰 돈을 주어야 하나? 큰 돈이라고 해봐야 천 투그릭 짜린데, 우리 돈으로 오백원도 안 된다. 하지만 객지에 살다 보면 현지 물가에 적응 되니 큰돈이다. 아이들 등살을 피하려고 서둘러 차려입고 나오니 봄날이다. 멀리 절도 보이고 언덕에 기념물 같은 것도 보인다. 휘적휘적 걸어 동네 한 바퀴 돈 다음에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오후에도, 그 다음날에도 아이들이 극성을 부린다. 아이들이 돈 맛을 들였다. 이 기회에 챙길대로 챙기려고 이집 저집 가리지 않고 쫒아 다닌다. 하긴 나도 예전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 친척이 아니더라도 안면이 있는 동네 어른 집에 찾아가서 새배하면 어른들이 공부 잘하라며, 새배 돈을 주었었다. 그런데 동네에 가게가 생기고, 명절이면 풍선과 화약 등 아이들 놀이감을 그곳에서 팔았다. 아이들은 그것들 때문에 돈 욕심이 생겼다. 우루루 몰려 다니는 새배 돈 갈취 패들이 돌아다녔다. 오십여년 전의 모습을 지금 몽골 샤인샨드에서 다시 본다. 새배 돈은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새해 첫 덕담도 듣는 소중한 만남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사히 잘 자라라는 마음으로 덕담하고, 용돈을 준다. 아이들은 그 돈으로 가지고 싶었던 것을 샀다. 여기도 자본화되어 가면서 이들이 가진 전통과 예절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처럼 되버리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준비 좀 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줘야겠다. 올 한 해 부지런히 공부해서 내년 차강사르에는 아이들에게 새배를 가르쳐 보자는 생각을 한다. <저작권자 ⓒ 소금바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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