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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봄 가을에 죽는다

고비의 4월

강성욱 | 기사입력 2019/04/30 [23:52]

미인은 봄 가을에 죽는다

고비의 4월

강성욱 | 입력 : 2019/04/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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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섬뜻한 말이지만, 몽골의 속담이다. 남쪽으로 내려갔던 해가 돌아오면 낮이 길어지고, 햇빛이 강해지고, 따뜻해져 활동하기 좋아진다. 그런데 공기가 햇빛 에너지를 받으면 불안정해져서 이리 저리 움직이게 된다. 바람 철이 시작된 것이다. 몽골 초원에서 바람이 불면 북쪽 고원에서 찬 공기가 밀려와 순식간에 기온이 내려간다. 그래서 날씨가 좋다고 해서 옷을 얇게 입고 멀리 나들이 했을 때, 바람을 만나면 위험해지게 된다. 실제 고비 사막에서 4월에 죽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날씨가 따뜻해져도 겨울옷을 벗지 말고, 추위를 대비하라는 몽골인들의 충고다. 따스한 봄날 아이들은 가볍게 입고 뛰어 놀고 있다. 하지만 몽골 할머니들은 두꺼운 델 차림으로 나들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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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없는 날은 기온이 제법 오른다. 이제 밖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 보내는 노인네, 놀이터의 아이들. 하일라스도 드디어 움트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작은 눈이 보인다. 식물처럼 대단한 것이 없다. 긴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뎌 내고, 좋은 시절이 오면 싹 티울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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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람에도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다. 구름이 보이는 날에는 폭풍이 몰아친다. 4월 들어 구름은 보이지 않으나 강한 바람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바람 자면 날은 금새 더워지고, 바람이 불면 찬바람이 온몸을 때린다. 광장에 게르가 지어지고 있다. 더르너고비 아이막 지방정부에서 각 솜(지방) 사람들을 초대해서 가정 후원 선물을 준다고 한다. 인구 증가가 최대 관심사인 이곳은 작년에 아기가 태어난 가정, 올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가정, 새로 결혼한 가정의 가족들을 초대해서 선물을 주는 행사를 한다. 각 솜(지방)에서 사람들이 오는 만큼 그들이 거처할 곳을 마련해야 한다. 유목민들의 순발력은 대단하다. 한 나절 만에 집 열 채가 금새 지어졌다. 그리고 행사 마치자마자 순식간에 게르는 사라지고 광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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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학교는 4월에 하브링하 살갈토르라는 학년말 시험을 치른다. 이 시험이 한 해 공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졸업생들은 이 시험 결과로 대학을 진학한다. 우리의 수능 격이다. 시험 문제는 모두 울란바타르 중앙 정부에서 제작해 배포한다. 몽골 학생들은 매년 국가시험으로 수학 능력을 평가한다. 지지난 주에 이 시험을 치르고 학교는 2주간 방학에 들어갔다. 오늘은 더르너고비의 모든 학교 교사들이 모였다.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체육대회를 여는 것이다. 종목은 농구, 배구, 탁구 등 실내경기 위주로 한다. 아침 9시에 개회식을 하고 생샨드 4개 학교와 체육국 체육관에서 흩어져서 삼일간 시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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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5개 체육관에서 배구 시합을 했다. 23개 학교가 남녀 별로 시합을 하니 한밤중이 되어도 체육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생샨드는 오랜만에 대목을 만났다. 600여명의 교사들이 몰려왔으니 호텔과 식당에 빈자리가 없다. 청춘들은 자유를 즐길 절호의 찬스를 만났다. 그들은 늦은 밤까지 삼삼오오 떼를 지어 PUPBAR를 돌아다니며 생샨드 경제 살리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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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두꺼운 쉐타 벗어버리고 와이셔츠와 양복을 입었다. 날씨는 따뜻해졌다. 하지만 코트는 아직 입고 다녀야 한다. 바람이 어느 순간에 몰아쳐올지 모른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정도의 바람만 불어도 금새 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간다. 길가의 나무들은 눈이 돋기는 한데 아직 싹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사막의 봄은 좀 더 기다려야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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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하일라스와 보르가스 가지에 작은 순처럼 생긴 것이 돋아 나온다. 지난 주에 보았던 것보다 약간 벌어져 있다. 이것들은 나무의 꽃이다. 자세히 보니 보일락말락한 작은 꽃잎도 있다. 솜털 같이 가는 수술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 나무들은 바람으로 수정하는 꽃을 피운다. 사막 바람을 견디기 위해 이 꽃들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것처럼 뭉쳐 있다. 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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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거센 폭풍이 휘몰아쳤다. 올 해는 신기하게 바람이 저녁에 온다. 낮에는 바람이 잔잔해서 활동하기 좋다. 바람이 자면 기온은 여름 날씨가 된다. 날이 좋으니 거리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길가의 하일라스는 가지에 돋았던 꽃잎을 떨어뜨리고 푸른 잎을 돋우기 시작한다. 사막의 나무는 참을성이 강하다. 봄이 올 때까지 따뜻한 날이 숱했건만 전혀 기색이 없다가 여름의 길목에서야 잎을 피고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때가 무르익을 때 까지 긴 시간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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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파리가 나왔다. 아침 잠 깨우며 눈 앞을 뭔가 휙 지나간다. 작은 파리 한 마리가 창가에 맴 돈다. 급히 파리채 꺼내 들고 쫒아갔는데 어디로 가고 없다. 이 녀석들은 대단하다. 육개월도 넘는 긴 겨울 동안 영하 삼십도가 넘는 강추위를 어디서 견디고 살아남았을까. 도시에는 하수도가 있어서 온기가 남아 있지만, 황량한 사막에서 긴 겨울 동안 온기는 전혀 없다. 파리는 어딘가 숨어서 극한을 이겨내고, 살만해지면 다시 나와 맹렬하게 번식한다. 이것들은 아마 지구가 멸망하더라고 끝까지 살아남아 다른 별에 둥지를 틀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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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다. 땅이 촉촉이 적셔져 있다. 출근길에 빗방울이 외투를 때린다. 여기서는 비를 그냥 맞아야 한다. 바람 때문에 우산을 들 수 없다. 그냥 맞아도 비의 양이 많지 않아 괜찮다. 오히려 반갑다. 사무실에 들어오니 동료들이 가따() 고이(예쁘다)! 고이(예쁘다)!’ 한다. 여기서는 비처럼 축복이 없다. 나무들도 드디어 잎을 활짝 펼치고 있다. 드디어 봄이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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