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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으로 세상에 태어난 우리 딸이 엄마가 된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통인 산고 보다 숭고하고 기쁨을 주는 고통이 어디 있으랴

강성욱 | 기사입력 2024/07/27 [11:18]

기적적으로 세상에 태어난 우리 딸이 엄마가 된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통인 산고 보다 숭고하고 기쁨을 주는 고통이 어디 있으랴

강성욱 | 입력 : 2024/07/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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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민이가 드디어 산고에 들어 갔다. 아침에 아내가 효민이한테서 양수가 나오고 피가 비친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한다. 오후에 수액 주사 사진이 가족톡방에 왔다. 조바심이 나지만 병원에 가 볼 수는 없다. 부디 이 산고를 견디고 새 생명 탄생의 기쁨을 마지하길 기원하며 이 글을 쓴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통, 산고 보다 숭고하고 기쁨을 주는 것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효민이가 세상에 나올 때, 아내의 산고는 상당히 길었었다. 1989년도에는 의료보험에서 출산을 위한 입원 보장을 3일 까지만 했다. 위생병원에서 의료보험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아내는 이 제도를 최대한 이용하겠다며, 출산 전날인 1월 14일 저녁 무렵에 분만 통증이 오기 시작했는데, 병원 앞에서 참고 기다리다가 자정이 넘자 입원을 했다. 당시 아내는 서른이 갓 넘었는데, 침상 표지에 병명을 노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이 결혼을 일찍 해서, 20대에 초산을 겪었다. 30대 초산은 노산이라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효민이 나이도 서른 다섯이니 그때 기준으로 보면 노산이다.

 

그런데 분만실에 들어간 아내에게서 소식이 없다. 당시에는 보호자는 분만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출산하고 나면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날이 밝아오고, 아침이 되고, 점심이 지났다. 졸리기도 하고, 배도 고프다. 간호사에게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때 셋집이 병원 근처에 있어서 10분 정도면 집에 갈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 밥한그릇 먹고 누웠다가 까빡 잠에 빠지고 말았다. 아차 하고 일어났는데, 창밖이 어둑하다. 급히 병원으로 뛰어 올라가 분만실 앞에 가니 의사가 보호자를 부른다. 젊은 의사가 이거 보라며, 태반이 담긴 대야에서 탯줄을 집게로 들어올려 보여준다. 이런 기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이 목에 탯줄이 두번 감겨있고, 탯줄이 홀매쳐져 있었다. 아이가 태중에서 잘 놀지 않았었느냐고 묻는다. 효민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거의 놀지 않았다. 어쩌다 배 한쪽이 쑥 나오다가 들어가는 정도였다. 의사는 아마 얘가 살기 위해서 그랬을 거라고 말한다.

 

기적적으로 세상에 나온 효민이가 지금 엄마가 되려고 한다. 효민이의 고난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효민이가 태중에 있을 때 큰 사고를 겪었었다. 그 때가 현충일인 6월 6일이다. 잉태한지 막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였다. 우리를 중매했던 기초과학연구소의 나훈균 박사 부부와 춘천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그때 훈균이는 숭실대학교에서 박사 코스를 밣고 있었고, 나는 학부 졸업해서 연희여자중학교에 과학 교사로 초임 근무하고 있었다. 전날 춘천에 기차 타고 가서 명동에 있는 닭갈비 집에서 저녁을 먹고, 여관에서 잠을 잤다. 당시에 경춘 완행 열차는 청춘남녀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데이트 코스였다. 우리 부부도 사귈 때 이 열차를 더러 탔었다. 아침에 그냥가기 아쉽다며 마트에 들어가 삼겹살과 취사 준비를 했다. 버스를 타고 소양호에 갔다. 소양호 뚝에 있는 선착장에는 오봉산 청평사 가는 유람선이 있고, 멀리 양구까지 가는 연락선도 있었다. 기왕이면 멀리 가는 게 어떠냐며 양구행 배를 탔다. 양구 선착장까지는 거의 두시간 정도 걸린다. 양구 선착장에 내려 짐을 풀고 내 비장의 무기 시나부로 석유 버너를 꺼냈다. 지금은 부탄가스 버너가 있어서 야외 취사가 간단하지만, 당시에는 야외 취사 장비는 귀했다. 나는 결혼 전에 낚시를 즐겨 다녀서 이런 장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아침에 마트에서 산 냄비에 밥을 해 내고, 삼겹살을 구울려고 납작한 돌을 찾았다. 돌을 하나 주워 왔는데 좀 두껍기는 했다. 그래도 버너 성능이 좋으니까 하며, 돌을 달궈 고기를 구었다. 마침 바람이 좀 있어서 바람막이를 버너 주위에 둘렀다. 이게 화근이었다. 내가 버너 앞에 앉아 고기를 구워 넘겨 주었다. 다들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가는데 아내가 교대하자며 자리를 바꿨다. 그러자 마자 사고가 터졌다. 갑자시 펑 소리가 나면서 버너가 폭발한 것이다. 펑 소리가 나자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피했다. 이때 버너의 불이 위로 퍼져 올라가다가 아내 머리부터 등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게 보였다. 아내 몸은 불로 뒤덥혀 있는데,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이런가. 멍하니 있는데 아내가 침착하게 윗옷 잠바를 벗어 내던진다. 그러자 불이 다 꺼졌다. 가까스로 정신이 들어 아내 곁으로 가니 왼손등이 불에 타 엉망이 되었다. 할수 있는 것은 아내를 물가로 끌고 가 찬 물에 손을 담그는 것 뿐이었다. 아내는 연신 울며 오빠를 부른다. 급히 길로 올라가니 다행이 택시가 한 대 있었다. 택시로 양구 시내 병원으로 갔다. 훈균이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화상을 입었는데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불이 나니까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갔다며, 아내에게서 원망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양구 병원에서 응급처치할 때 아내가 임신중이라고 했더니 의료진들이 놀란다. 아이에게 영향이 있으니 항생제를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아이 지우는 것을 권했다. 주사는 물론 연고도 함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손은 어찌되어도 좋으니 생명은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아내의 의지였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그때 아내의 고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여기에 산모의 고통은 그렇다 치더라도, 태중의 아이의 충격은 어떠했을까. 이때 놀란 아이가 몸부림치다 탯줄이 그리 되었을 거라 짐작한다.

 

위생병원에 연락하니 응급차를 보낸다고 한다. 그러면 시간이 걸리니 양구서 버스로 서울로 가고, 상봉터미널에 응급차를 보내라고 했다. 다행히 아내가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서 치료는 순탄하게 하였다. 하지만 손등에 남겨진 진한 화상 흉터는 항상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길을 갈 때 손을 잡을 때마다 손등의 상처가 만져진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성형시켜 예쁜 손을 되찾으리라 수도없이 마음속에 되뇌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아내도 노인이 되었다. 손등의 상처 자국은 거의 사라져 조금만 남았다. 남아 있는 그날의 앙금 아픈 기억이 효민이가 엄마가 되려는 순간에 마음을 흔들고 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되고, 지금 엄마가 된다. 정말 가슴 벅차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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