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고 나면 사막 도시에는 문제가 생긴다. 심한 바람에 전기 선로가 고장이 난 것 이다. 아침에 일어나 전등을 켜니 들어오지 않는다. 페이스북 생샨드 안내 페이지에 오늘부터 이틀간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정전이라고 있다. 전기가 없으면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전기 핑계로 다르항(대장간)의 보석 세공사들과 나들이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더르너고비 아이막의 10대 절경 중의 하나인 ‘이흐(큰) 나르(태양)트’ 다.
아침 일찍 대장장이 롭슨과 고터, 그리고 그의 친구, 나까지 다섯이 프리우스를 타고 ‘이흐 나르트’를 향해 출발했다. ‘이흐 나르트’는 더르너고비 아이막(우리의 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의 아이락 솜(우리의 군에 해당 함)과 달랑자르갈란 솜에 걸쳐 있는 자연보호지역이다. 달랑자르갈란 솜은 생샨드에서 울란바타르 쪽으로 200킬로미터 정도 북쪽에 있다. 그러니까 울란바타르에서 남쪽으로 300킬로미터 정도에 있는 곳이다.
달랑자르갈란 솜 투브(중심)는 울란바타르와 자밍우드를 연결하는 포장도로에 붙어 있다. 그래서 달랑자르갈란 투부까지는 편하게 갈 수 있다. 달랑자르갈란 솜 투브에서 서쪽으로 20여 킬로미터 가면 ‘이흐 나르트’ 암반지대가 나온다. 그런데 고비 사막에서 자밍우드로 이어지는 도로를 벗어나면 길은 없다. 달랑자르갈란 솜에서 벗어나 사막으로 들어가면 길은 사라진다. 단지 자동차가 다닌 자국을 보며 길을 잡아 가야 한다. 몇 킬로미터 쯤 사막길을 달리니 이정표가 나온다. ‘라샹 소빌랄(온천)’을 지나 ‘할잘 올(산)’ 방향으로 가면 ‘이흐 나르트’가 나온다고 한다.
삼십분 정도 사막길을 달리니, 바람에 풍화된 버섯 바위와 기이한 형상의 암석군이 나타난다. 몽골어로 산은 ‘올’, 암석 언덕은 ‘하드’라고 한다.
‘이흐 나르트’는 몽골 국회에서 1996년에 49번째로 지정한 자연보호지역이다. 면적이 43,740 헥타르에 달하는 광활한 곳이다. 남한의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이 지역은 비바람에 잘 풍화되지 않는 사암 성분의 암석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비가 적은 곳이라 암석이 주로 바람에 의해서 침식되어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암반 지대라 물이 땅속 깊이 스며들지 않아 적은 비에도 곳곳에 작은 내와 우물이 있다. 그래서 야생 동물이 많다고 한다. 특히 커다란 뿔을 가진 야생 양 ‘아르갈’과 야생 염소 ‘양기르’의 주요 서식지라고 한다. 오늘 우리의 목적은 이 놈 들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흐 나르트’가 자연보호지역이기는 하지만 유목민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출입이 금지된 곳은 아니다.
우리는 ‘이흐 나르트’ 암반 지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사막 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할만한 암벽 뒤에 자리를 잡았다.
막 자리를 잡고 나자 고터가 ‘태르(저기) 아르갈’한다. 저쪽에 뿔이 커다란 야생 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몽골인들은 눈이 좋아 먼 곳 까지 잘 본다. 나는 아무리 찾아도 발견할 수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코치를 받아 간신히 암벽 사이에 있는 아르갈 한 무리를 보았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너무 멀다. 내 캐논에 달려있는 300밀리로는 일 킬로 이상 멀리 있는 아르갈을 찍기는 어림도 없다. 50미터 정도씩 전진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다행히 내가 500미터 이상 갔는데도 이 녀석들이 그대로 있다. 욕심내서 좀 더 나갔다. 그런데 아쉽다. 이 녀석들이 휙 도망치고 만다.
할 수 없이 도망가지 않는 바위와 식물로 대상을 바꿔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다. 봄이라 작은 나무에 꽃이 만발해 있다. 가시가 달려 있고, 잎은 철쭉, 꽃은 앵두꽃과 비슷하다. 인터넷에서 관련 문서를 찾아 검색하니 ‘부일스’라는 이름의 식물이다. 아몬드와 비슷한 작은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몽골 사막 나들이할 때 연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아르갈(마른 소똥)을 주어 모으면 훌륭한 땔감이 된다. 그러고 보니 마른 소똥과 야생 양의 이름이 비슷하다. 고터 친구가 ‘촐로(차돌)’를 잔뜩 주어 안고 온다. 촐로를 아르갈 사이에 묻고 불을 붙인다.
아르갈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자 불에 달궈진 촐로를 꺼내 사각 압력솥에 고기와 같이 넣는다. 시커먼 아르갈 재가 묻은 촐로를 그대로 고기 사이로 쑤셔 넣는다. 한국의 아가씨들이 봤다면 기겁을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감자와 양파를 넣고 솥 뚜껑을 닿고, 나사를 조인다. 솥을 불에 올려 놓으면 잠시 후에 김이 나기 시작한다.
한 시간 쯤 지나 솥을 불에서 내리고, 쟁반에 고기를 꺼낸다. 고터가 나에게 칼 한자루를 준다. 연장자인 나부터 고기를 잘라먹으라는 것이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다. 주식이 쌀인 우리는 “얘야! 밥 먹어라!”한다. 몽골인들은 “자(네)! 마흐(고기) 이데레(먹어라)” 한다. 이들은 고기 먹을 때 술을 같이 마시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니까 배부를까봐 그런다고 한다.
어느 정도 식사가 되고 나면 보드카 병을 딴다. 술은 주인이 주는 대로 만 마셔야 한다. 연장자인 내게 보드카병을 건낸다. 먼저 ‘아야그(잔)’에 술을 따라 지신에게 축수하고 ‘차찰(고스레)’ 한다. 이어서 술을 따라 한 사람에게 권하면 공손하게 받아 마시고, 아야그를 돌려 준다. 차례로 한 순배가 돌아가면 주인이 잔에 술을 따라 모두 잘 되라고 축수하고 마신다. 이 다음 순배부터는 각자 축수하고, 노래하며 여흥을 즐긴다.
그런데 ‘이흐 나르트’는 자연보호지역이고, 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관광 캠프가 없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접근하기는 어렵다. 우리도 달랑자르갈란 투브에서 사막길로 막 들어섰을 때 경찰차가 와서 제지를 당했다. 친구 누구 네 찾아간다고 핑계대고 갈 수 있었다. 몽골인들과 같이 사는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저작권자 ⓒ 소금바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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