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샨드에서 주말에 시간 때우기가 여의치 않다. 여기 사람들과 엮여서 어딜 가기라도 하면 모를까 이틀이나 되는 주말이 더디 간다. 딱히 시간 보낼 영화관이나 볼 거리도 없고, 공원 벤치에 앉아 찬바람과 싸우기도 싫다. 방구석의 따분함 못 이겨 자리 털고 나가 봐야 상점 순례 이외 갈 데가 별로다. 고깃간에 들렀다. 마침 양을 잡아 손질 중이다. 고기 파는 아주머니가 기름이 적어서 아주 좋다며 ‘센!(좋아) 센! 거이(예뻐) 거이’ 한다. 하긴 겨우내 몸 축났으니 기름이 적을 수 밖에. 그래서 옛날에 징기스칸이 봄에 배고픈 가축을 잡지 말라고 했다던가. 꽤나 동물을 사랑하는 것 처럼 말했다. 실은 기름을 좋아하는 몽골인들에게는 이 때 잡은 양고기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다리까지 붙은 한 쪽 갈비를 달라고 했다. 몽골인들은 물건을 사는 것을 가진다고 말한다. ‘아바흐’ 가 ‘가지다’이다. 내가 사서 가지고 가니까 과거형이 되어 ‘아브슨’이다. 그러니까 ‘헌니(양) 헤브라흐(갈비) 아브슨(샀다)’ 했다. 4킬로그램이 넘는다. 이만 삼천 투그릭을 주었다. 만원 정도 된다.
집에 가져와서 뼈를 발라낸다. 뼈 발리는 것도 ‘아브슨’이다. ‘야스(뼈) 아브슨(가짐)’ 하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 갈비뼈가 열세 개 나오고, 아주 가는 물렁뼈 같은 것이 하나 더 나온다. 다리뼈와 부채 모양의 허벅찌 뼈까지 말끔하게 발라냈다. 이 정도면 이제 나도 푸줏간 차릴 만하다. 뼈 발라낸 ‘촐(고기)’이 삼킬로그램이 넘는다.
몽골 양고기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한국 사람들은 이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양고기에는 지방이 삼겹살처럼 껍질 쪽에 넓게 퍼져 있어서, 돼지고기 삼겹살과 모양과 성질이 비슷하다. 고추장 양념을 해서 고기 냄새 잘 다스리면 괜찮은 요리감이 된다.
먼저 양갈비 고기를 깍두기 정도로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그리고 소스라는 양념을 만든다. 고기 양념에는 과일이 필수다. 단 맛도 있지만 고기살을 연하게 한다.
냄새 잡는 생강과 마늘, 단맛 나는 양파와 무를 넣는다.
믹서에 양념 재료를 썰어 넣고, 간장 반 컵 약간 더 되게 넣어 잘 갈아 죽이 되게 한다. 이 양념 소스가 티브이에서 누군가가 종내 떠들어대는 만능소스 다. 여기에 파 마늘 잘게 썰어 넣고 소고기 무치면 소불고기가 되고, 뻘건 거 넣어 무치면 고추장 불고기가 된다.
양념 죽을 바가지에 딸아 담아 놓고, 붉게 물들여 맛을 낸다. 고춧가루를 넣기 전에 설탕 약간과 식초 몇 방울을 넣으면서 맛을 본다. 입맛을 자극하는 방법은 별 게 없다. 적당하게 짜고, 달고 시면 된다. 약간 달게 하되, 느낄 듯 말 듯 한 신맛이 나면 최고다. 고춧가루가 들어가면 맛이 범벅이 되니 먼저 달고 시고를 맞춘다.
고춧가루는 눈에 보기 좋을 정도로만 넣는다. 매운 정도 보다 붉은 색이 연하고 예쁘면 된다. 마지막으로 고추장을 넣어 죽에 진기를 더해 주면 양념 소스가 된다. 그런데 고추장을 풀면 짜지니까 간을 보아가면서 넣어야 한다.
티브이 맛집 순례에서는 양념 소스를 숙성시키고 어쩌고 하는데, 그건 별 의미가 없다. 바로 고기와 무쳐도 별 차이 없다. 준비된 양갈비에 양념과 지난 여름 고비 사막에서 뜯어 온 흐믈(야생파) 소금 절임을 넣고 잘 섞는다. 고기 표면에 양념이 잘 입혀지도록 양을 조절하여 넣으면서 비비면 닭갈비보다 맛있는 양갈비 요리감이 완성된다.
혼자서 어쩌려고 저렇게 많이 만들었나 걱정 될 것이다. 하지만 절묘한 한 수가 있다. 한 손으로 불고기감을 한주먹 잡으면 이백그램 정도 된다.
작은 비닐 봉지에 한 주먹씩 갈라 넣으니 열 다섯 개가 나왔다. 이걸 잘 묶어 냉동실에 넣는다. 어쩌다 고기요리 생각나면 아침에 냉동실에 있는 놈 하나를 냉장실로 옮겨 놓는다. 저녁에 냉장실을 열면 프라이팬에 들어가기 적당한 상태로 녹아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감각 무딘 친구들을 위해 양불고기 요리재료 레시피를 공개한다.
양불고기 15인분 레시피
양고기 3kg 양파 1개(중간 크기) 사과 1개(작은 것) 배 한 개 큰 것은 반 쪽 무 두 세 쪽(단무지 용 무 10cm 길이 자른 정도) 생강 한 쪽(엄지 손가락 만한 것) 마늘 20쪽(큰 것) 양조 간장 반컵(50ml) 설탕 큰 수저 1개 식초 5ml 고춧가루 큰 컵 1 고추장 큰 수저 2개
닭갈비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양배추와 닭고기가 고추장 범벅되어 볶아진 것이 양도 많고 맛도 괜찮다. 서양인들은 양배추를 요리에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쓰지 않는다. 이유는 잘 익지 않아서 볶음 요리에 어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닭갈비집에서는 커다란 불판에 불을 한꺼번에 왕창 때서 단단한 캐비지가 순식간에 숨이 죽는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양배추가 물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있는 물질에서 열에 가장 잘 견디는 것이 물이다. 주어진 열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는 정도를 비열이라고 하는데 물이 가장 높다. 이 비열을 잘 이용하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요리 재료를 펼쳐 놓고 이것 들에 들어 있는 물의 양을 가능해 보라. 양배추에 가장 많이 들어 있고, 양고기, 고수, 버섯 이런 순일 것이다.
먼저 프라이팬에 몽골 버터를 넣어 녹인다. 몽골 초원에서 들풀만 먹고 사는 소에서 나오는 우유는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우유일 것이다. 이걸로 만든 버터는 어디 비길 데가 없다. 더구나 값도 엄청 싸다. 250그램에 오백원 정도 된다.
버터가 적당히 녹으면 후추로 시즈닝을 한 양배추, 적채, 양파, 당근채를 넣어 볶는다. 여기에 소금을 넣으면 안 된다. 양불고기에 들어 있는 소금 만으로도 간은 충분하다.
채소들이 어느 정도 숨 죽으면 팬 가로 채소들을 붙이고, 가운데에 양불고기를 넣어 볶는다. 고기 조각을 잘 뒤집으며 익힌다.
고기가 살짝 익었다고 생각되면 버섯과 고수 등의 나머지 채소를 넣고, 몽땅 섞으면서 익힌다. 이때 불을 약간 줄인다. 불이 너무 세면 먼저 익은 양파와 당근이 늘어 붙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적당히 익으면 접시에 잘 담는다. 매운 볶음 요리에는 면이 좋다. 면 중에서도 소면이 제일이다. 골뱅이무침에 국수가 잘 어울리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울란바타르의 이마트나 25번가(호른타우)에 있는 MK 마트에 가면 소면을 살 수 있다. 소면을 일인분 약간 안 되게 삶는다. 소면을 손으로 쥐었을 때 소면 묶음 단면이 오백원짜리 동전만하면 일인분이라고 한다. 양불고기의 고기와 채소의 양이 제법 되니까 면에 욕심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 이 정도에도 소면이 좀 많다. 요즘에 몽골인들이 집에 오면 삼겹살 대신 양불고기를 내놓는다. 매운 볶음 요리는 좀 식어도 식감이 그리 쳐지지 않는다. 늦은 시간에 한잔 생각나 찾아 온 친구들에게 양갈비 한 접시 뚝딱 해내면 그만이다. 소면으로 허기 때우고, 매운 맛으로 보드카 독기 누르니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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