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샨드가 인구 이만명도 안 되는 작은 곳이지만 여러 명의 국제협력단원들이 나와 있다. 최근에 이들을 알게 되었다. 몇 주 전에 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했었는데, 그 자리에서 계속 모임을 하자고 했다.
국제협력봉사단원이란 OECD 나라들에 각각 국제개발협력을 위해 정부 기구가 있고, 거기서 파견한 사람들이다.
생샨드에서 활동하는 봉사단원들이 소속된 기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으로는 미국의 피스콥이 있다. ‘Peace cops’은 우리에게 이름이 익숙한 평화봉사단이다. 이 기구는 50여년 전에 설립되어 141개국에 이미 23만명의 봉사자를 파견한 미국의 정부 기구다.
다음으로 활동이 활발한 기구는 일본의 자이카(JICA)가 있다. 자이카는 홈페이지에 의하면 1954년에 설립된 것으로 나와 있다. 상당히 오래 전에 설립되어 현재 교육 등 20여개 프로그램으로 전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https://www.jica.go.jp/english/index.html
중국에는 ‘항방(HANBAN)’이 있다. 이 기구는 중국 교육부 소속으로 공자학원이라 불리는 국제언어진흥원이다. 2004년에 설립된 이 기구에서는 중국어 교육만을 위해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코이카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협력단은 1990년에 시작해서 1만명 정도 월드프랜즈 코이카 봉사단원을 파견하였고, 현재는 1,400명 정도, 30여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https://www.koica.go.kr/koica_kr/index.do
현재 몽골에 파견되어 있는 미중일 봉사단원은 대략 각국별로 100명 정도씩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절반 수준인 50명 정도다. 파견자들 대부분은 자국 언어 강습 교사로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다. 봉사자 대부분은 울란바타르에 거주한다. 생샨드와 같은 시골에서 활동하는 봉사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몽골 인구의 절반 이상이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으니 그곳에 외국어 교사가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일본과 중국 단원의 영어 실력은 상당히 좋다. 우리나라 외국어 고등학교 출신과 비슷한 수준의 영어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전문적으로 영어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여 진다. 그에 비하면 미국 단원은 거저 먹는다. 각국 활동가들이 영어를 잘 하니 그들은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다. 여기다 좀 더 심한 것은 미국단원들의 몽골어 이해 수준이 가장 낮다. 이들은 강대국의 특혜를 단단히 누리고 있다.
아무튼 몽골 초원에서 동양 3국이 자국 언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현재 몽골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언어는 한국어다. 이는 한류의 영향이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일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 가장 쉽다. 현재 몽골에서 공무원을 비롯한 지식층들의 월 평균 급여가 우리 돈 3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최저 임금의 거의 오분의 일 수준이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몇 달만 일하면 일 년 벌이는 쉽게 챙긴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를 쓴다. 내가 여기서 한국어 강습 광고를 내면 삼십 명 이상 모여 교실에 꽉 찬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국어 가르치는 교사는 나 혼자 뿐이다. 좀 아쉽다.
지난 3월 3일(일) 더르너고비 아이막 의회에서 봉사단원들을 격려한다고 시골 나들이 행사를 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생샨드에서 가까운 유목민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하루 나들이였다. 아침 10시 반에 아이막 청사 앞에 모였는데, 피스콥 단원 3명, 자이카 단원 3명, 항방 단원 1명, 코이카 단원 나 1명이 나왔다.
피스콥 단원은 1번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피터, 5번학교 보건 교사 한나, 영어 교사 코드니다. 자이카 단원은 5번 학교 일어 교사 사또, 1번 학교 일어 교사 메구미, 2번 학교 일어 교사 에리꼬가 나왔다. 항방 단원은 5번 학교 중국어 교사 웨이링이다. 나는 교육국에서 일한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국제협력단원 모두 교육부문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푸르공 1대와 랜드 크루이저 1대에 분승하여 알탕 쉬레 솜 까지 이동하여 아직 겨울 풍경인 황량한 초원을 돌아보았다. 따뜻하고 바람이 없어서 초원을 걷기 아주 좋은 날씨다. 우리를 태운 푸르공이 예전 러시아 전차 기지 앞을 지난다. 사진 찰영을 위해 차를 세웠다. 마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 장면 같은 거대한 군사 기지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러시아 군대와 전차는 모두 철수했지만 기지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고비에는 이와 같은 전차 기지가 몇 군데 더 있다. 과거 60년대에 러시아는 고비 사막에 수만 명의 군대와 전차를 주둔시켜 놓고, 중국을 위협했었다.
지난 여름에 왔던 ‘셍 오스’ 우물에 갔다. 셍 오스는 알탕 쉬레에서 가장 큰 우물이다. 한 겨울에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데, 이 우물은 얼지 않고 물이 콸콸 나온다. 파이프 라인에서 나온 물이 들판에 고여 얼어 붙어 있다. 빙판을 만났으니 다들 신이 났다. 나를 제외한 단원들 모두 20대 청년들이다. 이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얼음판에서 놀이에 정신이 없다.
겨울에 우물은 유목민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곳이다. 가축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축 한 무리가 와서 물을 먹고 나면, 저 쪽에서 또 한 무리가 온다. 이들은 가축들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가축을 몰고 온다. 우물을 차지한 가축들이 어느 정도 물을 먹고 나면, 목동은 서둘러 가축들을 몰고 사막 저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한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가축 무리가 다가온다. 이들은 서로를 배려하기 위하여 우물을 사용하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한다.
우리는 생샨드 근교에 있는 유목민 집을 방문하였다. 풍력 전기 발전 단지 앞에 있는 나담 ‘모린 가자르(말 달리기 경기장)’ 근처에 있는 집이다. 이 집은 생샨드에 가까운 곳에 있어서인지 상당히 규모가 있다. 게르 한 쪽에 주택이 있고, 가축 우리도 잘 지어져 있다. 작년에 알탄 수레에서 보았던 유목민의 게르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부유한 집이다. 이 집은 이동을 하지 않고, 여기에 정착해 살고 있는 목장집인 것 같다.
가축 우리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호라크(양 새끼)’가 여러 마리가 있다. 젊은 처녀들이 어린 양을 보고 기뻐한다. 가축우리를 열고 들어가 호라크를 끌어안고 마마라고 하며, 호들갑을 떤다. 우리가 이 집에 있는 동안에 두 마리의 양이 새끼를 낳았다. 봄이 오는 길목인 지금이 한참 양과 염소의 출산 시기이다.
집주인은 소 내장 삶은 요리와 허르헉으로 식탁을 준비했다. 반주로는 보드카와 ‘내르밀(우유 발효주를 증류한 것)’을 내놓는다. 주인은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 차례로 돌린다. 몽골에서는 집에 온 손님이 술 석 잔은 받아 마셔야 주인이 만족한다. 젊은 처녀들도 넙죽넙죽 받아 마신다. 숫기가 좋다. 피터와 사또가 여성 단원들 대신 받아 마시는 흑기사 노릇을 한다. 이들은 나이가 스물일곱으로 둘이 같다. 서로 잘 어울린다. 사또에게 활동 마치면 뭐 할 거냐고 물으니 카나다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피터는 카나다가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가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적극 추천한다.
이 청년들을 보니 참 복 받은 애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윗세대는 지난 전쟁 때 서로 총을 겨누고 싸웠었다. 좋은 시절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복이냐. 시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렇게 서로 어울리며 즐길 수 없다. 이들은 멀리 다른 나라에 와서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이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와 가장 가까운 땅의 청년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지낼까. 그 날이 오기는 오겠지. 어서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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