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문화예술 담당 후드레가 티켓을 내민다. 왕관을 쓰고 있는 남자가 그려진 티켓이 만 투그릭이다. 섹스피어 연극이라고 한다. 연극을 ‘주지그’라고 한다. 노래는 ‘도’, 춤은 ‘부지그’ 다. 연극 제목을 물어보았다. ‘리르 한’이라고 한다. Lear 를 몽골인들은 끝의 묵음 처리된 r을 발음해서 ‘리르’라고 한다. 몽골어 한을 영어 ‘khan’으로 옮겨 적으니까, 몽골인들은 왕을 ‘한’이라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칸’으로 읽는다.
처음 보는 몽골 연극이라 기대를 하고 ‘사란 테아뜨르’에 갔다. 삼백석 객석을 모두 채우고 통로와 앞줄에 의자를 더 놓을 정도로 관객이 몰렸다. 입구 회랑에 배우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후흐드 어르동에 다니는 ‘나르카’가 옆에 와서 ‘글로스터 백작’ 그림을 가리키며, 저 배우가 자기 아버지라고 한다. 후드레는 출연자 모두 ‘더른 고비’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극장에 연극배우가 35명이 소속되어 있고, 일 년에 3번 정기 공연을 한다고 한다. 올해는 1월, 5월, 10월에 연극이 있단다. 아이막에 칠만도 안 되고, 이 도시에 이만명도 안 되는 인구에 불과한데 문화적인 수준은 상당하다.
연극 무대는 화려하지 않다. 간단하게 유럽풍의 대리석 기둥을 무대 양편에 장식해서 영국 분위기를 냈다. 그리고 무대 후면에 있는 멀티큐브로 배경 그림을 내보내 장면마다 효과를 준다. 배우들의 의상과 간소한 무대 장식만으로 섹스피어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돈을 적게 들이고도 대작을 공연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몽골어는 파열음이 많아 배우들의 대사가 강열하게 전달된다. 따라서 극적인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돋보였다. 리어왕과 같은 비극은 극적 전환이 많아서 몽골어 섹스피어 연극이 색다른 맛이 있다. 그런데 관객들은 연극 내용이 생소한 지 반응은 영 썰렁하다.
이 극장의 머루 호루 악단이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무용수들이 출연하여 리어왕이 폭풍우 속에서 황야로 뛰쳐나가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몽골 무용은 발동작이 경쾌해서 무용수들의 춤이 연극에 활력을 준다. 그런데 프랑스 군과 영국군의 전투 장면을 멀티큐브 화면으로 간단하게 처리하고 만다. 차라리 이 장면에서 무용수들의 군무가 나왔으면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수주의에 빠진 섹스피어가 프랑스군이 패배하고, 영국군이 승리하는 것으로 결말을 짓는 바람에 연극은 왕과 대부분 주연들의 죽음으로 비극이 된다. 리어왕의 죽음 이후 왕국에 평안이 오는 피날레를 십자가를 등장시키며 막이 내린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몽골인들이 좀 별난 발상을 하고 있다.
리어왕은 중학교 시절에 한번 읽어 본 기억은 있다. 그래도 내용이 감감해서 급히 대본과 줄거리를 인터넷에서 찾아 급히 예습하고 관람했다. 극 중 장면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거의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극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상태라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에 빠져 시간 가는지 모르고 연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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