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명목상으로는 사계절이 있다. 하와르(봄), 준(여름), 나마르(가을), 어월(겨울)이다. 그런데 고비에서는 여름과 겨울 두 계절만 두드러진다. 봄이나 가을은 두 계절이 교차되는 길목에 불과하다. 이 기간에는 바람이 많고, 기온 변화가 심해서 사람들이 고생을 한다. 남과 북에 자리 잡은 거대한 기단이 교차되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기온을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비 사람들은 봄과 가을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고 한다. 농사짓는 우리나라에서는 꽃피는 봄과 오곡을 추수하는 가을이 좋다. 기온도 적당하고 경치도 좋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대륙의 사막에 사는 이들에게는 봄은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은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련의 계절이다.
11월 3일(토)
창 밖에서 우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길 건너편 광고판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다. 하늘은 뿌옇고, 아파트 옥상에 걸린 전기 줄이 심하게 흔들린다. 밖에 나가려면 단단히 옷을 추슬러야겠다. 후후드 어르동에서 세브지드 본선이 열리고 있어서 가야 되는데, 거기까지 갈 일이 끔찍하다. 스키파카로 몸을 단단히 감싸고 후드모자 졸라 메고, 찬바람과 싸우며 후후드 어르동에 갔다. 여기서는 후드모자 둘러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패션이다. 바람과 추위 때문에 모두 그렇게 하고 다닌다.
11월 12일(월) 지난 5일 더르너고비 교육문화예술국 내에 컴퓨터실을 만들기 위해 전기 재료와 실내 장식 재료를 사러 울란바타르에 갔다. 나도 이제 건망증이 생기는지 물건 챙길 때 중요한 것을 하나 정도는 빼 먹는다. 노트북 어댑터를 숙소 콘셑에 꽂아 놓은 채 갔다. 덕분에 일주일 동안 컴퓨터 없이 편하게 살았다. 울란바타르는 완전한 겨울이다. 톨강은 거의 얼어 붙어 있다. 강심에는 아직 물이 흐르기는 한다. 게스트하우스 앞 작은 내는 밤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면 바닥까지 얼어붙는다. 낮에 그 위로 물이 흘러 넘쳐 둔치를 적신다. 둔치를 적신 물이 밤에 얼어붙어 얼음 바닥이 넓어진다. 한겨울이 되면 이 냇가는 모두 얼음으로 덥힐 것 같다. 어제 생샨드로 돌아오니 여기는 아직 가을이다. 누렇게 변한 고비의 들판을 보며 돌아 왔다. 여름비에 고인 호수에는 살얼음이 덥혀 있다. 맑은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분다. 큰 바람만 없으면 여기는 몽골에서 견딜만한 곳이 된다.
11월 14일(수) 밤새 바람이 창을 심하게 흔들었다. 창 밖의 전기줄이 춤춘다. 스포르팅 가자르 앞의 깃발은 남쪽으로 펄럭인다. 여기서 강한 바람은 거의 북풍이다. 북쪽 대륙의 찬 공기의 이동이다. 아침에 아파트를 나오니 축대 돌 틈 사이에 눈이 쌓여 있다. 여기는 눈이 내리면 들에 소복이 쌓이지 않는다. 눈은 바람에 날려 돌 틈새에 숨어버린다. 바람 잔 계단 틈새에 쌓인 눈이 보인다. 날은 금새 맑아졌지만 목에 감기는 바람은 매섭다. 영하 십도 정도는 되어 보인다.
11월 19일(월) 11월 들어 큰 바람은 오지 않았다. 창밖을 보면 따뜻해 보이나 정작 나가면 공기는 살이 에이도록 차갑다. 요즘에는 다섯시가 되면 해가 서쪽 지평선에 걸린다. 동지가 가까워오니 해가 남쪽으로 많이 내려와 방안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으려니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이 방해한다. 할 수 없이 네 시 좀 넘어 언덕에 올라갔다. 그런데 너무 빨리 나왔나보다. 해가 많이 남아있다. 이십분 정도는 기다려야 되겠다. 바람은 없어도 추위가 엄습한다. 생샨드 시내는 게르에서 석탄 태우는 연기로 뿌옇다. 파르가 들어가지 않는 단독주택과 게르는 석탄난로로 난방을 한다. 연기가 분지에 자욱하게 가라앉는다. 사진 몇 장 찍고, 시내로 내려오니 연기 때문에 목이 싸하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집안 공기 환기도 어렵다. 창문 꼭 걸어 잠그고, 바깥 공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단두리 해야 한다.
11월 26일(월) 밤새 폭풍이 몰아쳤다. 집 앞의 하일라스가 거의 허리까지 휘는 걸로 보아 초속 30m는 넘어 보인다. 메마른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휩쓸려 모래폭풍이 된다. 모래바람이 창을 요란하게 때리고 지나간다. 이런 폭풍이 밤에 몰아쳐서 다행이다. 아침에 창밖을 보니 조용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잔잔하다. 오늘이 몽골독립기념이라 휴일인데 롭슨이 근무라고 해서 기관에 가 보았다. 공기는 몹시 차다. 초속 30m 이상의 강풍이 몇 시간 불면 수백킬로미터 이상의 공기가 지나간 셈이다. 북쪽의 찬 공기가 고비를 덥고 있다. 이제 고비 기온도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11월 30일(금)
아침부터 단수에다 정전이다. 집 옆에 있는 송수관 밸브가 터진 것이다. 비축해 둔 물은 5L 들이 여섯 통이다. 아침 해결하고 변기 물을 내릴려니 물이 안 나온다. 변기 물통 뚜껑을 열고 물을 부으니 두통이나 들어간다. 소변 보고 물 한번 내리면 10L가 사라진다. 생각 외로 많은 물이 들어간다. 거의 내가 샤워할 때 쓰는 양과 비슷하다. 하루에 변기 물 열 번 내리면 반 드럼 통 이상의 물을 쓰는 것이고, 샤워 열 번 하는 꼴이다. 이거 고민이다. 소변을 참아야 하나 냄새를 참아야 하나, 둘 중 하나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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