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젖’이라는 단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한자를 쓰기 좋아해서인지, 성적으로 민감하게 여겨서인지 ‘젖’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우유’또는 ‘무슨 유’라는 억지 표현을 한다. 몽골 사람들은 모든 ‘젖’을 ‘수(СҮҮ)’라고 한다. 우유는 소의 젖이니까 ‘우후린 수’, 염소 젖은 ‘야마니 수’ 다. 젖은 어린 새끼를 키우는 수단이다. 포유동물은 젖을 먹고 자라 성체가 된다. 몽골인들은 젖의 고마움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미니 세한 에즈(나의 좋은 어머니)’의 첫 구절에서 어미젖의 감사함을 나타내고 있다.
Сүүний үнэр шингэсэн(수니우~~니르싱~그센) 젖 냄새 스며든
Сэвлэг даахьтай байхад минь(세르레 데~흐테 베~하~미~ㄴ) 내 머리 속 미영털
Дууны сайхан эгшгээрээ(도니세한 에쉬게레) 노래 속에 묻혀 있네
몽골인들은 오축의 젖을 모두 채취해서 이용한다. 소는 젖이 많아 매일 짜야 소가 건강하게 산다. 그래서 ‘우후린(소의) 수’는 매일 채취한다. 1,2월에 새끼를 낳는 헌(양), 야마(염소), 아도(말)는 새끼가 다 자란 6월부터 채취한다고 한다. 그리고, 테메(낙타)는 겨울철에나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8월은 ‘야마니 수(염소 젖)’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이다. 10월 까지 염소 젖을 짠다고 한다. 저녁마다 염소 젖을 짜 내기 위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 난다.
염소는 소처럼 묶지 않고, 놓아 먹일 뿐 아니라, 개체 수도 많다. 그래서 특별한 방법을 써야 한다. ‘야마니 상’을 만들어야 한단다. 상은 진열된 보관 장소를 말한다. 도서관은 ‘노민 상’, 약국은 ‘이민 상’이다. 그러니까 ‘염소 진열’이라고 하면 되겠다. 먼저 양과 염소 무리를 우리 쪽으로 몰아온다. 목동들이 채찍을 들고, 양을 쫒아내고 염소만 우리 안으로 밀어 넣는다.
8월 경에는 숫염소는 거의 도축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염소는 암컷이다. 우리 안으로 밀려 들어온 염소를 로프로 목을 감아 두 줄로 열을 세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엉덩이를 밖으로 돌린 채 줄을 지어 묶이게 된다. 이를 ‘야마니 상’이라고 한다. ‘야마니 상’이 만들어지면 여자들이 양동이를 들고 염소의 젖을 차례로 짜 낸다.
천여마리의 가축에서 하루 동안에 나오는 젖의 양이 상당히 많다. 몽골인들은 젖을 다양하게 가공하여 음식을 만든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수태채’다. 여기서 ‘채’는 차이고, ‘태’는 ‘~이 들어간’ ‘~이 있는’이라는 조사다. 그러니까 젖이 들어간 차를 의미한다. 우유를 사용하면 우후린 수태채, 야마니 수를 넣으면 야마니 수태채가 된다. 게르 안주인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끓여 준비하는 것이 수태채다. 게르에 사람이 들어오면 누구든 먼저 수태채를 권한다. 거절하면 녹차인 ‘하루(검은)채’를 권한다. 이마저 거절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 집의 손님이 아니니까 나가야 된다.
젖을 오래 두면 지방 성분이 위에 뜨게 된다. 이를 걷어내어 굳힌 것을 ‘토스’라고 한다. 흔히 우리가 버터라고 부르는 것이다. 토스는 음식에 넣기도 하지만 공장에서 가공하여 화장품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아침마다 얼굴에 바르는 로션을 몽골인들은 토스라고 한다. 마켓에 가서 스킨로션을 찾으려면 점원에게 ‘토스’ 달라고 하면 된다. 몽골 오축은 먹는 사료부터 무공해 천연 풀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이에서 나온 토스의 품질을 믿어도 된다.
토스를 걷어 내고 나서 젖의 단백질을 굳힌다. 하루 정도 지나 젖이 굳은 부분이 많아지면 자루에 넣어 물을 빼낸다. 고형 성분만을 추출해 내서 그릇에 담아 식사할 때 반찬으로 먹는다. 이를 ‘으름’이라고 한다. 염소젖은 산화가 늦기 때문에 으름이 시지 않고 맛이 좋다.
으름과 토스를 잘 섞어 아주 딱딱하게 건조시킨다. 거의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바짝 말린다. 이렇게 말린 과자를 ‘아롤’이라고 한다. 아롤은 보관이 편하기 때문에 몽골인들이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즐겨 먹는 간식이다. 최근에는 공장에서 우유를 대량으로 말려 만들어진 아롤이 상품으로 나오기도 한다. 시골 게르에서 만들어진 아롤은 만들어지는 시간이 길어서 아롤에서 신맛이 난다. 몽골인들은 신맛이 나는 아롤을 진품으로 친다. 염소 젖을 건조한 아롤을 ‘에지기’라고 한다. 에지기는 신맛이 거의 없고 담백한 맛이 난다. 염소 젖은 6월부터 10월까지 채취하기 때문에 한여름에 시골에 가지 않으면 맛 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다.
유제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요구르트다. 몽골에서는 ‘тараг 타락’이라고 한다. 몽골에서 유제품과 음료를 생산하는 ‘ГОЁ 거이(좋은, 예쁜)’라는 상표가 있다. 여기서 나온 타락의 맛이 우리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 그렇지만 몽골인 들은 시골에서 만들어진 신맛이 나는 타락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긴다. 시골 타락은 몸에 약이 된다고 말한다.
우후린 수(소젖)는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하루에 나오는 분량도 많다. 게르에서는 우후린 수를 나무통에 넣어 발효시켜 술을 만든다. 이 술을 ‘애릭’이라고 한다. 소 젖을 나무통에 넣고, 계속 저어주어야 잘 발효된다. 이 몫은 아이들이 맡는다. 아이들은 게르에 들어오면 바로 통 위에 나온 막대를 들었다 내리며 발효유를 젓는다. 애릭은 이틀 정도 지나면 발효가 충분히 된다.
이른 새벽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안주인은 난로에 증류통을 올려놓고 에릭을 증류한다. 주전자에 증류되어 나오는 맑은 술, ‘내르믈’를 담는다. 주인이 몽골 소주라고 하며 권한다. 젖을 발효한 술을 증류한 것 인 만큼 위에 기름기가 약간 보인다. 조금 퀴퀴한 맛이 있지만 마실 만하다. 도수는 이십오도 정도 되는 것 같다.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음식으로 공급받는다. 우리가 입으로 들어가는 밥 한 끼를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와 에너지, 버려지는 것들을 보자. 낭비되는 물질과 에너지가 꽤 된다. 우리는 좋은 정착지에서 풍요로운 수확 덕분에 호강을 하고 있다. 황량한 사막에서 적게 가지고 사는 여기 사람들은 유목에서 나온 것들을 거의 버리지 않고 갖은 방법으로 가공해서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작은 것으로 살아가는 삶을 인간다움이라고 해야 하나, 자연스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가르치는 몽골 아이 하나가 그런다. 만약에 지구의 종말이 있다면 가장 오래 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자기들이란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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