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에서 재무 담당하는 직원 바트침게가 이 달까지만 일하고, 다른 데로 옮길 거라고 한다. 환송 행사 겸해서 그의 가족이 있는 알탄 쉬레를 다시 찾았다. 봄에 여기를 방문했을 때 알탄 슈레로 들었었다. 그런데 표지판을 보니 이름이 ‘알탄 쉬레’로 나와 있다. 슈레는 루비이지만 쉬레는 탁자이다. 그러니까 ‘황금 탁자’라는 이름을 가진 고장이다.
여름 고비는 사막이 아니다. 지난 봄에는 헐벗은 들판에 모래 바람 부는 황량한 사막을 만났었다. 7월과 8월 중에 거의 한 주에 한 두 번은 비가 내렸다. 엘리뇨 때문에 거대하게 발달한 북태평양 고기압에 밀려 구름을 가득 품은 저기압이 몽골 고원까지 밀려 올라온 덕분이다. 잦은 비로 이번 여름은 풍족했지만 겪어보지 못했던 물난리를 만나기도 했다. 도로와 공원이 뻘에 잠기고, 심지어 인근 아이락 솜에서는 홍수에 기차역이 쓸려나가기도 했다.
초원으로 변한 사막길을 푸리우스가 시속 70킬로미터에 가까운 속력으로 내 달린다. 사방은 푸른 풀로 덮혀 있다. 여기 저기 물 웅덩이가 보인다. 심지어 거대한 호수가 된 곳도 있다. 아무카는 ‘따래(바다) 따래’ 외치며 차를 몬다. 호수가 주변은 아프리카 초원처럼 동물들이 모여 있다. 수천마리의 헌니(양)와 야마(염소) 무리, 수십마리의 아도(말)와 테메(낙타) 무리들이 호수가로 몰려가고 있다. 들에 자란 풀은 거의 발목까지 올라오고, 호수에 물이 가득하니 고비의 오축 들은 이보다 더 행복할 때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여름은 열매가 풍성하니 영그는 계절이지만, 고비의 여름은 오축이 살찌는 계절이다.
바트침게 가족이 사는 게르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난 봄에 이동했던 곳이 아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한 번 더 이동해서 이곳으로 왔단다. 이들은 들판이 한참 풍성할 때, 한 번 더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으로 이동해서 가을을 맞으려고 한다. 목적지는 여기서 오십킬로미터 정도 서쪽으로 떨어진 곳이다. 생샨드와 조금 더 가까워진다.
게르로 들어가니 모두들 반가워한다. 아무카의 바로 위 형 바이라, 그리고 노모가 있다. 바트침게와 그의 시어머니가 저녁 식사로 초이반(칼국수 볶음)을 준비한다. 항상 난로가 타고 있는 게르에서 밀가루 칼국수 만들기는 편리하다.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어 전병을 만들어 사등분해주면 한 조각씩 난로 위에 올린다. 얇은 밀가루 전병이 약간 타면서 잘 마른다. 이를 잘게 썰어 칼국수를 만든다. 밀가루가 타면서 나온 연기는 게르 톤(지붕창)으로 바로 빠져 나간다. 그리고 이 연기를 피해 사막의 얄라(파리)들이 모두 도망간다.
여름이 초원의 일꾼들은 고달프다. 저녁 일곱시가 넘었는데도 해가 동동 떠 있으니 헌니(양)와 야마(염소)가 자리에 앉지 않는다. 해가 기울 때까지 이들을 몰아 게르 가까운 쪽으로 데려와야 한다. 날이 어둑해져서야 일꾼들이 게르로 들어온다. 게르 안주인은 이들이 들어오는 대로 수태채(우유차)를 건낸다. 차를 다 마시고 나면 더 마시겠냐고 묻고, 아니라면 아야그(대접)에 초이반을 담아 준다. 초원의 게르에서 먹는 초이반은 괜찮다. 그런데 도시의 '체니 가자르(작은 음식점)'의 초이반은 왜 그렇게 짜고 맛이 없을까. 원인은 분위기와 오늘 하루 흘린 땀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막 밤의 별잔치를 못 보았다. 하루가 힘들었는지, 보드카에 취했는지 푹 떨어져 있다가 깨어나니 새벽이다. 여름밤의 은하수 양쪽 알테어(견우)와 베가(직녀)를 못보고 꿈속만 헤메고 말았구나. 너무 아쉽다. 게르 할라그(문)앞의 노호이(개)는 잠에 취에 늘어져 있다. 동쪽 하늘에는 희미하게 빛이 올라오고 있다. 해가 오르려면 이삼십 분은 기다려야한다.
게르로 들어오니 안주인들이 분주하다. 살림을 잘 갈무리해야 게르 이동할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몽골 가정에서는 여자 특히 엄마의 권위가 대단하다. 대단한 술꾼인 아무카가 엄마 앞이라고 어제 보드카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이들은 엄마를 위하는 일이나 시키는 일은 제일 먼저 한다. 엄마가 아들한테 쩔쩔매는 우리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초원에서 서로의 일이 조화되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난 그들의 질서이다.
이번의 게르 룬(이동)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일꾼들도 많아졌다. 아무카의 조카 아무라는 이제 열 살이 되어 당당하게 말을 몰고 오축 무리를 몰고 다닌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 집이 함께 이동해서 일꾼들이 더 많아졌다. 역시 많은 집이 헙력하면 일은 수훨해진다. 더구나 푸른 초원의 멋진 풍경을 보며 이동하는 재미로 힘든 여정이 쉽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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