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더른고비의 들판은 사막이 아니다. 7월의 단비는 사막을 생명이 움트는 초원으로 탈바꿈시켰다. 7월에는 거의 한 주에 한 번 정도 비다운 비가 내렸다. 고비에 이렇게 많은 비가 온 적이 없다고 한다. 덕분에 사막은 푸른 들이 되었다. 단잔 라브자는 “골짜기에 노고가 무성한데도 걱정이 있다면, 번뇌는 네가 만든 것이다” 고 했다. 생명이 풍성한 이 여름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찬란한 계절을 즐기라고 그는 말한다.
7월 1일(일)
하루 종일 구름이 몰려오더니 저녁에 드디어 소식이 왔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창밖에 우당탕거린다. 비가 내린다. 그것도 땅이 모두 젖고, 사람들이 비를 피해 숨을 정도로 비가 내린다. 사람들이 얼굴에 몇 방울만 묻어도 ‘세한 버러’하며 감사하는데, 이 정도면 축복이다. 서둘러 저녁 물리고 거리로 나왔다. 빗방울이 간간히 때린다. 서울에는 장대비가 내려 피해를 걱정하고, 여기도 비다운 비가 내려 비에 땅이 젖었다. 광장의 사람들은 생기가 넘친다. 페이스북도 정신이 없다. 비오는 거리를 방송하고, 비에 젖은 거리가 동영상으로 올라온다.
7월 2일(월)
어제 몰려온 구름이 여적 머뭇대고 있는가. 검은 구름이 하늘을 짓누르고 있다. 그런데 바람은 잔잔하다. 한국도 장마 물 폭탄에 수해 피해가 크다고 와이티엔 뉴스가 아우성이다. 동변상련인가 여기도 물폭탄이다. 내 마음이 있는 곳, 내 몸이 있는 곳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몽골의 도시는 물 배수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비에도 길 가는 곳마다 물웅덩이가 생겨 다닐 수가 없다. 도로 구배나 배수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건 여기만이 아니다. 비가 잦은 울란바타르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비 한번 오면 도시가 물바다가 된다. 건조한 고원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물에 대한 무감각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7월 4일(수)
우릉 우릉 천둥 소리가 난다. 왠 하늘에 날벼락인가. 여기서 천둥 소리라. 좀체 듣기 어려운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북쪽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잠시 후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창을 때린다. 소나기다. 우루루 밖으로 나간다. 여직원 둘이 마치 분수 속에 뛰어든 아이처럼 비를 맞으며 좋아한다. 벌써 비가 삼일이나 계속 내렸다. 7월은 시작부터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축복의 여름이다.
7월 7일(토)
하루 내 바람이 잔잔하다. 어제 비를 몰고 온 구름이 밀려나고 흰 뭉게구름이 둥실 떠 다니더니 저녁이 되자 심상치 않다. 북쪽 하늘에 지평선을 덮는 누런 구름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쇼로 쇼로’한다. 구름이 아니다. 바람이 일으킨 황사 덩어리다. 진대하가 서둘러 차를 몰아 자기집으로 간다. 다른 사람들도 창문 단속하라고 전화를 한다. 진대하가 위로 걷어 올려진 게르 한(벽)을 내리고 단속을 하자 마자 세찬 바람과 함께 황사에 뒤덮인다. 아파트의 창문을 닫고 나오기 잘했다. 거의 30m/s 정도의 거센 황사 바람이 세 시간 정도 불더니 맑은 바람이 밀려온다.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하나가 사막을 쓸고 지나갔다.
7월 15일(일)
나담 축제 구경하려고 3일간 울란바타르에 있었다. 울란바타르는 3일간 연속 비가 내려서 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가 가을처럼 서늘했다. 어제 샤인샨드로 오면서 보니 구름이 초이르까지 덥혀있다. 몽골 내륙에서 발생한 구름은 샤인샨드까지는 영향을 주지 않는가 보다. 밤에 바람이 거세진다. 스포르팅 가자르 앞의 깃발을 보니 북쪽을 향한다. 짙은 층운이 하늘을 덮고 오전 내 비가 내린다. 아마 장마전선이 만주 쪽으로 북상하여 구름을 여기까지 밀어올린 것 같다. 칠월 들어 비가 많다. 칠월이 사막의 장마철인가.
7월 17일(화)
사막의 베드윈이 초승달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늘에 초승달이 걸려 있을 때가 그들에게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초승달은 해가 뜨고 나서 해를 따라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초승달이 동쪽 하늘에 뜨는 것을 볼 수 없다. 하루 종일 해를 따라 다니다가 해가 서편에 지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초승달이 지평선 속에 숨으면 한밤중이 된다.
사막의 여름 해는 불같이 뜨겁다. 고비는 해가 뜨거운 낮에 바깥 기온이 사십도 가까이 오른다. 그러나 해가 비치지 않는 그늘이나 실내는 그보다 십도 이상 내려가 시원하다. 맹렬한 태양 아래 사람들은 낮에 야외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이 방학기간인데도 아이들이 낮에 공원에 나와 놀지 않는다. 해가 저물고 샤인샨드 광장이 땅거미에 덮이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놀이터에 쏟아져 나온다. 사막에서 여름에 초저녁 시간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이다. 요즘에 샤인샨드 사람들은 거의 7시부터 10시 넘어 까지 야외 활동을 즐긴다. 광장에 아이들 놀이터가 되고, 공원 한쪽에 꼬치구이 좌판도 진을 친다. 초승달이 아름답게 비칠 때가 이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다.
7월 20일(목)
아침 운동 마치고 온수기 전원 올리니 소식이 없다. 등을 켜 보니 들어오지 않는다. 정전이다. 아침밥 만드는 시간에 또 정전이다. 할 수 없이 찬물로 샤워했다. 여기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 수돗물로 공급한다. 바깥 온도가 삼십도를 넘는데도 물의 온도가 17도 밖에 안 된다. 찬 물로 간신히 머리만 감고, 몸에는 물만 묻혔다. 부르스타가 있어서 다행이다. 대충 아침 끓여 먹고 일과 시작하러 가자르로 나갔다. 나가봐야 할 일도 없지만 할 일 없다고 주저앉으면 그대로 무너지고 만다. 지금은 ‘아무른 사르’ 라고 휴가 기간이다. 몽골의 교육기간은 7, 8월은 직원 대부분이 쉰다. 기관에서도 업무를 하지 않는다. 서류 결재나 증명서 발급을 위해 민원인들이 가끔 온다. 그들에게 휴가 기간이니 두 달 후에 오라고 한다. 낭패한 얼굴이지만 그리 불만은 보이지 않는다. 고객 중심이라며, 자기 일만 우선으로 주장하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7월 23일(월)
그야말로 폭우가 왔다. 남풍이 세지면 거친 구름이 몰려온다. 천둥과 함께 굵은 빗발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정전까지 동반한다. 비가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사막에서 횡재다. 그런데 도시가 문제다. 이 도시에 비가 이렇게 많이 온 적이 없다. 그래서 도로에 배수 시설이 없다. 순식간에 물이 모여 내를 이루고 길이 물에 잠긴다. 점심 먹으러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이 여기저기 물에 잠겼다. 이리 저리 빙빙 돌아 간신히 집에 들어 왔다. 7월은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비가 왔다. 이 사막에서 7월은 우기인가보다. 덕분에 벌거벗은 언덕 너머 들판은 푸르게 덮이고 있다.
7월 24일(화)
대비가 없는 것에 대한 피해는 크다. 빗물에 쓸려 도시 곳곳이 파이고, 토사가 쌓였다. 어제 한국어 공부를 하기로 한 학생은 가게에 물이 차서 퍼내느라 못 온다고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빗물이 벽을 뚫고 들어와 회벽이 떨어지고, 창문 옆 방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아침에 나가니 기관마다 사람들이 나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주차장에 퇴적된 흙을 퍼내고, 살수차로 공원 마당의 흙을 쓸어내린다. 엊그제 완공된 공원 진입로도 흙이 쓸려나가 푹삭 가라앉았다. 거의 백 밀리도 안 되는 비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 사람들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일 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대비는 해야 한다.
어제와 같이 큰 비를 ‘사야 버러’라고 한다. 버러는 비다. 몽골어로 크다는 표현은 ‘이흐’이다. 대학교는 이흐 소르고일, 백화점은 이흐 델구르다. 이흐로 감당이 안 되는 엄청나게 큰 것은 ‘사야’라고 한다. 몽골 숫자에서 0 세 개가 먕가이고, 여섯 개인 백만이 ‘사야’다. 비슷한 개념의 표현이다. 사야 버러로 낙타 광장이 진흙으로 뒤덮였다. 어린이 놀이터가 물웅덩이가 되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즐긴다. 이 아이들은 물에서 진흙 놀이하는 것을 아마 처음 해 보았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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