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 봉사단원으로 몽골에 파견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긴급 대피 훈련을 한다는 공지가 왔다. 6월 21에서 25일 사이에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지면, 울란바타르로 모두 소집하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기관의 몽골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몽골에 안전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는데, 무슨 대피 훈련이냐며 좀 황당해 한다. 그러나 안전한 곳이라고 무방비로 있다가 나중에 된통 당한다. 비상 훈련은 항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과정이 정해져야 한다. 요즘에는 이걸 매뉴얼이라고 한다.
훈련 날짜가 다가오면서 지시사항이 빈발한다. 내용은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지역 소집 여부를 보고하고, 최대한 빨리 수도로 집결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통편은 현지 단원이 수배해서 타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 교통비 지급을 위한 영수증과 운전자 신분증을 복사하라는 서류 당부를 한다.
더르너고비 샤인샨드에서 울란바타르로 가는 교통수단은 버스와 열차가 있다. 버스는 매일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여 10시쯤 울란바타르에 도착한다. 기차는 저녁 8시에 타면 다음날 아침 6시에 울란바타르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카풀 택시가 있다. 카풀 택시는 울란바타르로 이동하는 승용차에 편승하는 것이다. 이용 방법은 페이스북의 샤인샨드 광고 페이지에 광고하여 서로 연락하여 이용한다. 24일에 페이스북 샤인샨드 자르(광고) 페이지에 샤인샨드에서 울란바타르로 두 사람 출발시간과 전화번호를 올렸더니 한 군데서 연락이 왔다. 가족이 이동하는데 두 사람은 탈 수 있다고 한다. 다행으로 여기며 응낙하고 기다렸다.
다음 날 조그만 승용차 한 대가 기관 앞에 서더니 나를 찾는다. 아뿔싸, 좀 더 자세하게 물어 볼 걸~ 차에 올랐더니 가관이다. 그 쪽 가족은 어른 셋에 아이 셋이다. 우리 둘과 합해서 어른 다섯, 아이 셋 도합 여덟 명이 이 작은 차를 타고 사백오십 킬로를 달려야 한다.
실제 상황이 아니니까 가는 길은 여행이다. 조금 힘들어도 창 밖에 흐르는 풍경을 보면 즐겁다. 몽골 평원은 거칠 것이 없다. 마냥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몽골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즐겁게 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가는 도중에 식당 앞에 차를 세운다. 몽골 길에는 휴게소라는 곳은 없다. 적당한 식당이 있는 곳이 휴게소다. 이 몽골 식당은 외국인들을 배려해서 메뉴를 사진으로 찍어 한쪽 벽에 도배를 했다. 몽골 음식에서 간편하고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호쇼르다. 호쇼르는 밀가루 전병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튀긴 만두다. 크기는 손바닥 만하고, 두께는 손가락 굵기 정도다. 호쇼르는 튀김이라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기관에서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이 호쇼르다. 그래서 호쇼르를 팔러 다니는 애그치(언니)들이 있다.
다행히 가는 차가 더르너드가 목적지다. 이 차는 울란바타르 시내를 가로 질러 북으로 달려야 한다. 지금은 징기스칸 광장인 수하바타르 광장을 지나 차를 세우고 우리는 내렸다. 코이카 사무실이 여기서 몇 분만 걸으면 된다. 사무실에 가서 출석 점검을 하니 숙소를 알려 준다. 이로써 나는 오늘 임무를 완수했다.
그런데 여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외국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 더구나 국가에서 파견한 요원이라면 비상사태에 당연히 국가에서 책임지고 안전하게 고국으로 데려와야 한다. 그런데 내가 주재한 곳에서 수도로 오는 동안의 교통수단에 국가에서 관여한 게 전혀 없다. 우리가 광고해서 같이 갈 차 찾아 어렵게 왔다. 고맙게도 차비는 줄 테니까 영수증을 내란다. 이거 참! 그러니까 너희가 잘 해서 수도까지 오면, 그 다음에는 국가에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나, 국민 한 사람을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나라도 있는데 말이다.
안전 매뉴얼은 최악을 상황을 가정해서 과정을 그려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페이스북 광고, 차량 수배 등은 주재원들이 하기는 불가능하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와 계약된 교통수단이 주재원들이 상주한 곳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해당 정부 치안 당국과 협력해서 차량을 임차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할 때, 한인회 간부의 푸념을 들었다. 90년대에 그곳에서 쿠테타가 발생하여 치안이 불안하였었단다. 이 때 일본은 JAL기를 동원하여 주재 일본인들을 모두 데려갔단다. 남아공에 있는 대사관에 어떻게 해야되느냐고 물었더니 팩스 한 장이 달랑 왔단다. 일 안전한 인접국으로 대피하시오, 이 소요가 발생한 곳으로 접근하지 마이소, 삼 가까운 일본 대사관에 협조를 구하시오. 국가가 이 정도밖에 못하다니 얼마나 창피한가. 그런데 오이시디의 주요 국가로 발전한 지금 우리 수준은 그 당시와 별반 다름이 없다. 어떻게~ 잘~ 최선을 다해서~ 이런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몇 시간 만에 우리는 다 소집했어, 이런 실적에만 매달린다. 그런데 주재원을 어떻게 철수 시켜야 한다는 과정에 대한 준비는 없다. 과정마다 해결책을 만들고 제시해야 한다. 누구라도 그에 따르면 별 무리없이 해결되어야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성과만 따질 것이 아니라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대피 과정에서 국가의 할 일이 무엇인지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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