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꾸리기
강성욱 | 입력 : 2018/02/23 [02:48]
마음 조리며 8주 보내고, 집으로 왔다. 교육생 규율에 금기 사항이 있다. 술, 폭언, 추행 이런거, 예사로울 수 있는데 안 된다. 술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 있다. 귀국단원이 술에 엉킨 사건을 추궁하자 화를 못참고 버럭질을 하는 바람에 음주 규율을 어긴 죄로 귀가했다. 룸메 한 녀석이 화를 돋군다. 속에서 욱하며 올라오지만 참아야지. 가야지 않느냐. 아무튼 이렇게 부글거리는 속 누르며 8주를 보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 얼굴이 싸하다. 안아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그녀는 내 마음을 이미 꿰뚫고 있다. 멀리 가려고 작정한 사람 달래봐야 무슨 소용이랴. 모로 보는 아내 얼굴이 너무 안쓰럽다. 굳어진 얼굴, 처진 어깨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난다. 이렇게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하지만 독해 져야 된다. 먼 옛날 전장에 보내는 낭군을 바라보는 여인네들은 어땠을까?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집안을 둘러보니 일이 산더미 같다. 나 없이 일 년을 지내려면 화장실 세면대 괜찮아야 되는데... 영동로에 나가 유자관과 부속을 사와 갈아 끼우는데 종일 걸린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아내에게 칭찬 한마디라도 기대했건만 대꾸는 야멸차다. ‘내가 말한 게 언젠데 이제야 난리냐고~’ 아내 속은 고마운 것보다 집 나가려는 남자의 뒷 가름을 본 것이다. 다음날 정수기를 만지려니 부속을 잘못 신청했다. 11번가에서 6mm 부속 신청하고, 배송 기다려 부속 갈고, 정수 물 나오는 하우징을 보니 검은 티가 섞여 나온다. 아이고! 이것도 문제고나! 또 주문이다. 이틀 기다려 이것도 정리하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은행 일도 만만찮다. 어머니 장모님 용돈 자동이체 신청하고 오니 부름의 전화가 마음에 걸린다. 차일피일 미루다 나가기 하루 전에 마무리 했다. 치과 갔더니 전선생이 이제는 치아 보호가 관건이라며 이를 온통 공사하고 뽄을 뜬다. 뭐냐 했더니 이를 보호하는 마우스피스를 만들 거란다. 월요일 아침에 갔더니 플라스틱으로 만든 마우스피스를 끼워준다. 먹거나 활동할 때 이외에 쉴 때, 잠잘 때 모두 이걸 끼우고 있으란다. 적응되면 편한 만남 같은 경우에도 생활하듯이 끼우란다. 그런데 이걸 끼우고 같이 갔던 최선생하고 얘기하려니 도통 말이 새고, 바쁘게 말 하려니 구역질도 난다.
마지막으로 짐정리다. 3박 4일 여행 짐을 꾸려도 만만치 않은데, 2년 생활 버틸 것을 꾸리려니 머리 속이 하얘진다. 그래도 우선은 연장이다. 팬치부터 랜 툴까지 챙기다 보니 몇 키로나 된다. 그리고 유에스비 연장선부터 시작해서 온갖 연결선 모으니 장난이 아니다. 여기다 영훈이가 준 하드디스크 까지 하면 족히 20킬로는 될 거 같다. 그리고 먹을 것들, 가락시장가서 젓갈 네 종류, 새우젓까지 사니 6킬로,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각각 1킬로 씩. 옷은 여름 거 겨울 거 방한 바지 등 이것저것 챙기니 이민가방과 대형 케리어가 꽉 찬다.
아내는 왜 이런 거 가져가느냐, 무게 줄이려면 포장이 떼내고 알맹이만 넣어야지, ‘당신은 짐싸는데 잼뱅이야,’ ‘오빠 봐라 오빠가 싸면 아마 확 줄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잔소리다.
이것도 차마 웃으며 보내지 못하고, 아픈 마음 삭히려고 그러는 구나. 또 다시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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