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강사르 휴가 기간 동안 거리의 가게는 모두 문을 닫는다. 식료품은 물론 하다못해 물 한병 살 수 없다. 다행히 집주인이 생수 20리터 들이 한 병 들여다 주었다. 울란바타르에서 가져온 쌀 한 봉지 이틀을 때웠다. 오늘은 삼일 째니 성미 급한 사람 하나쯤을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막 나가려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열어보니 코 워커 바레가 벌써 한잔했는지 벌건 얼굴로 서 있다. 나에게 손짓으로 빨리 가잔다. 너의 집에 가는 거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알아들을 수 는 없지만 ‘따라그’가 귀에 들어 온다. ‘따라그’는 두목이다. 직장 우두머리를 ‘따라그’라고 한다. 국장이 초대한 것이겠구나 짐작하며 따라 갔다. 국장 집에 들어가 보니 이미 전 직원이 모여 파티가 진행중이다. 이날은 국장집을 시작으로 몇 집을 돌아다니면서 차강사르 파티를 즐겼다.
몽골인들은 차강사르날에는 가족 행사를 하고, 가까운 친척을 초대하여 파티를 한다. 다음날에는 친구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파티를 한다. 그리고 삼일 째는 직장 동료들이 모여 차강사르 축하 파티를 한다. 이들은 양력 설인 새해에도 신질파티라고 해서 성대하게 파티를 한다.
차강사르 상차림은 거창하다. 우리의 떡에 해당하는 히빙바우(딱딱한 빵)를 쌓아 시루를 만들고 그 안에 아롤(우유말린 과자), 사탕을 쌓아 탑을 만든다. 그리고 그 주변에 과일과 고기 접시를 놓아 상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런데 우리처럼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야채와 육고기, 생선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만들어 차례 상을 차린다. 하지만 유목 인은 가축 고기와 우유가 전부다. 오축이라 불리는 말, 낙타, 소, 염소, 양이 있다. 넉넉한 집안에서는 오축 고기 요리를 모두 준비하지만 형편에 따라 소고기와 양고기를 위주로 상차림을 한다. 요리 방식은 물에 삶아 익힌 다음 식혀서 얇게 썬다. 우리의 편육과 비슷하다. 그리고 곡물 식사는 ‘보츠’라고 불리는 고기 만두를 만든다. 차강사르에 한 집에서 보츠를 몇 천 개 이상을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몽골에서는 만두 빚어 보관하기가 아주 쉽다. 집안은 도시 난방 ‘파르’가 있어서 아주 따뜻하다. 따뜻한 방안에서 여자들이 보츠를 빚어 쟁반에 담아 놓으면, 남자들이 밖으로 내간다. 밖에 나간 보츠는 몇 분 후면 영하 30도 강추위에 땡땡 얼어버린다. 그러면 바로 통에 쓸어 담는다. 그런데 요즘의 도시 생활자들은 공장에서 생산된 보츠를 사다가 먹는다.
손님에게 맨 처음 대접하는 것이 수태채다. 손님들이 자리에 앉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수태채를 대접을 돌린다. 그리고 수태채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부어준다. 그리고 고기 수육을 접시에 담아 돌린다. 접시가 오면 손으로 집어 먹거나 자기 접시에 놓는다. 이들은 좁은 집에서 많은 사람이 식사할 때 포크나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간편하게 음식을 먹는다. 고기 접시가 몇 번 돌고 나면, 뜨겁게 찐 보츠가 나온다.
부자집은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상에 올려 놓는다. 주인이 고기를 썰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권한다. 이러면 식사는 마쳐진다. 우리처럼 거나한 상차림을 하지 않으니 뒤에서 수발하는 사람이 별로 필요없다. 식사가 어느 정도 되면 안주인까지 참석해서 본격적인 주연이 벌어진다.
파티에서 술은 기본이다. 몽골인들의 음주 문화는 완벽한 남녀 평등이다. 유목 생활에서 생겨난 것인지, 사회주의 평등 문화 탓인지 모르겠지만, 파티 참석자가 미성년자 아니면 도두 같은 수준으로 술을 마신다. 수태채 한잔 마시고 나면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말 젖을 발효한 마유주를 큰 대접에 담아 돌린다. 마유주는 우유를 발효한 것이니 만큼 약간 시큼해진 우유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콜 도수는 막걸리보다 좀 덜하다.
몽골인들의 본격적인 술은 보드카다. 러시아에서 유입된 보드카는 이제 몽골인의 국민주가 되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몽골 보드카는 징기스칸이나 소용보다. 그런데 몽골인들이 즐기는 보드카는 ARKHI 다. 아르크니는 약간 단맛이 나는 드라이한 보드카다. 우리가 약간 단맛나는 참이슬을 애용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아무튼 주인은 보드카 잔을 인원수대로 따른 다음 돌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있다가 잔을 걷어 들인다. 이렇게 몇 순배 지나가면 모두가 거나해진다. 술 약한 여성들이 잔에 술을 남겨도 주인은 뭐라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주인은 몽골 고유 증류주 에릭을 내 놓는다. 소 우유를 발효해서 증류한 거다. 기름이 많기 때문에 뜨겁게 데워서 먹는다. 동료가 솔롱거스 소주와 같은 거라고 한다. 소주처럼 맑은 술인데 우유 발효주를 증류한 것이니 만큼 기름이 둥둥 떠 있다. 발효한 우유의 케케한 냄새가 나는 드라이한 술이다. 알콜 도수는 소주보다 좀 진하고 보드카보다 약간 덜하다.
따끈하게 데워진 에릭을 큰 대접에 담아 한사람씩 돌린다. 잔을 받은 사람은 바로 술을 마시지 않고 덕담을 한다. 술잔을 든 사람의 말이 끝나면, 좌정은 두 손을 앞으로 들고 돌리면서 ‘호레 호레’ 한다. 마치 우리가 ‘고시레’하는 것과 비슷하다. 파티의 피날레는 가무다. 한차례 덕담이 돌고 나면, 잔을 받은 사람이 노래를 한다. 그러면 모두 따라서 같이 부른다. 노래방에 가야만 노래가 나오는 우리 보다, 예전 모습이 남아 있다. 몽골 노래는 구성이 단순하다. 네 박자나 한 소절마다 숨 고르는 가락이 나온다. 처음 듣는 나도 따라 할 만 하다. 여기 있다 보면 여기 노래 하나 쯤 부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차례가 왔다. 솔롱거스 노래한다고 했더니 다들 좋아한다. 여기서 한류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런데 한류의 빠른 노래를 어떻게 부르나? 한국말을 조금하는 동료가 ‘아리랑’ 한다. 나는 ‘에~’하면 손사래를 친다. 그건 술자리서 재미없다. 나의 영원한 애창곡 ‘짝사랑’을 한 목청 뽑았다. 다들 좋아하며 장단을 맞춘다. 내년 차강사르에는 이들 노래 한곡 쯤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연이 마쳐지면 주인이 작은 향수병을 꺼낸다. 그러면 참석한 남자들이 모두 품에서 비단 주머니에 싼 향수병을 꺼낸다. 향수병을 오른손에 쥐고 악수하는 것처럼 상대편 남자에게 인사한다. 그러면 서로 향수병을 교환하고, 병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맞고 나서 병을 돌려주며 인사한다. 남자들과 인사가 끝나면 여자들에게도 향수를 권한다. 여자들은 향수병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주인이 권하는 향수병을 받아 냄새를 맞은 다음 돌려준다. 이러면 주연이 마무리된다.
주연이 마무리되면 좌중에서 가장 연장자를 의자에 모신다. 그리고 모두들 ‘하닥’을 꺼낸다. 하닥은 머풀러같은 비단 천인데, 이를 가방에 넣어 다니기도 하고, 델 허리띠에 잘 접어 걸치고 다니기도 한다. 인사하는 사람은 하닥을 두 팔에 받치고 연장자에게 다가가 서로 팔을 감싸고 새해 인사를 한다. 인사한 다음 양 볼을 서로 비비고, 연하자는 연장자에게 돈을 건낸다. 보통 천투그릭이나 오천투그릭 새 돈을 연장자에게 바친다. 연장자에게서 새배 돈을 받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항상 붙어사는 우리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근엄하게 절한다. 멀리 떨어져 사는 이들은 어쩌다 만나면 반가와서 얼싸안는다. 정주민과 유목민의 인사방법이 대비되는 장면이다. <저작권자 ⓒ 소금바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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