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은 첫소식, 처사촌 언니의 부음이다. 아내와 동갑인데 언니로 부르던 아내 사촌이다. 십년전쯤 폐암이 발견되었었다. 남대문 커먼플라자 라는 상가에서 옷장사를 했었다. 잘 나가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원단 먼지와 가스가 병의 원인일 것이다. 다행히 실손을 들어서 치료에 부담을 가지지는 않았다. 치료는 순조로왔다. 수술도 잘되고 항암치료도 괜찮다고 했다.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었다. 내린천에 가서 살기도 했다. 우선해지니까 상가에 복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극구 반대했다. 가면 죽는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는게 나았을걸 한다. 현대의학이란게 누구를 위한 의술인가 생각을 하게 한다. 암이라는 병을 낫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몸은 회복시켜주지는 않았다. 계속 투약을 하고 방사선을 쪼여야 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몸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십년이 흘렀다. 그가 산 십년의 세월이라는 것. 차라리 살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세월이다. 인간답지 않게 산 십년. 의료 동맹자들은 이 십년을 떵떵거렸다. 하지만 대상자는 인간의 존엄, 몸을 그들에게 빼앗겼다.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병자는 몸이 괴롭고 가족은 생업을 빼앗겼다. 집안 모두가 구석진 곳으로 내몰렸다. 제법 규모있던 아파트를 내놓고 간신히 거처할 만한 곳으로 집을 옮겼다. 일도 하루에 몇 조각 부리나케 하고 돌아오는 일, 일컬어 알바라는 것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십년이다. 이제 슬퍼할 눈물도 메말랐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이 이렇다. 내게 십년전의 그에게 닦친 것이 온다면 어떻게 할까. 위기, 그 때 결정을 내릴 용기가 있을까. 나도 자신이 없다. 그렇게 의료 동맹자들에게 내 몸을 맞기고 생을 포기하며 살아야 할까. 천둥치던 밤을 보내고 비내리는 아침을 맞은 지금 심각한 고민속에 빠져있다. 하지만 지금이 중요하지 않은가. 내 몸을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때 해야한다. <저작권자 ⓒ 소금바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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