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족들과 같이 리마인드 웨딩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출발 비행기가 한시간 지연된다는 문자가 왔다. 다행이다. 덕분에 여유있게 김포공항으로 갔다. 우리의 여행 운이 좋다. 하늘은 맑고 한 낮이라 시야가 훤하다. 모처럼만에 국토 종단하며 산천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린다. 비행기 뜨고 이십분 쯤 지나자 서쪽 멀리 구름을 두른 산무더기가 보인다. 지리산인가 보다. 저 아래 남쪽에 큰 물이 있다. 우리나라에 저렇게 큰 호수가 있었던가. 착각이었다. 남해안이 호수로 보인 것이다. 바다 위에 한 점으로 보이는 상선 하나. 이 바다를 나가 남지나해로 가려나. 구름 목두리를 두른 한라산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이번 여행에 한라산 등반은 없다. 34년전 제주도로 2박 3일 신혼여행을 갔었다. 첫째날은 단체 관광을 하고, 둘째날은 다 물리고 집사람과 한라산을 올랐었다. 젊은 호텔 종업원이 자기도 갈 거라며 동행해줬다. 집이 부산인데 여기에 돈 벌러 왔다고 한다. 어리목에서 윗새오름으로 해서 백록담에 올랐었다. 그 때 내가 기침 가래가 심했었다. 오랜 흡연으로 기관지가 많이 나빠져 있었다. 결혼 밑에 하도 가래가 끓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의사가 나이는 스물 몇살인데 폐는 환갑이 다 됐다며 혀를 끌끌 찾다. 산행 중에 연신 가래를 뱃느라 뒤쳐지곤 했다. 쉴 때 마다 새신부가 잘라 건네주는 사과 한 쪽이 힘이 되었다. 날이 참 좋았었다. 날만 좋은 건 아니었지. 인생 최고의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리마인드 웨딩으로 다시 간다. 그 때 못지 않게 가슴이 뛴다. 그 땐 한 사람과 같이 갔었다. 지금은 세사람이다. 엄청 부자가 되어 다시 한라산을 보러 간다. 그 때 백록담의 정기가 우리 부부의 삼십여년을 지켜주었나 보다. 담배와의 질긴 연도 그 이후로 단절했다. 지금은 이렇게 건강하다. 아무래도 한라산 산신령이 몰래 뒤에서 도와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내 항공은 입출이 간편해서 좋다. 출입국 수속이 없으니 비행기 내려 짐만 찾으면 된다. 랜트카는 둘째가 미리 예약해 두었다. 주차장에는 랜트카 셔틀 버스가 오른쪽 편에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랜트카 없체는 빌리카다. 마침 쉬고 있는 아저씨에게 빌리카 셔틀버스를 물었다. 입담이 걸작이다. 여기서는 차 못빌리고 저 아래가면 빌릴 수 있단다. 집사람이 어리둥절해하자 내심 성공했다는듯이 낄낄거린다.
제주도는 랜트카 천국이다. 수십군데 업체마다 수백대의 차가 대여된다. 돌아다니는 차의 절반 이상이 허 넘버다. 지난번에 제주도 사는 신선생이 그놈의 허가들 때문에 못살겠다고 푸념했었다. 3박 4일에 12만원으로 QM6를 빌렸다. 2만원만 더 주면 제네시스도 가능했는데 차종 잘못 골랐다고 아쉬워한다. 승차감과 성능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연초에 집의 차량 교체를 고심하다가 그랜저를 선택했는데 참 다행이라고 뒷담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운행하다가 브레이크 소음이 너무 심해 전화로 불만 사항 알리고 영업소를 방문했다. 다른 차로 교체했는데 적당한 차가 없어서 가스차가 배당되었다. 가스차는 출력이 휘발류 엔진보다 못하지만 연료비가 적게 든다. 여행 기간 동안 그런대로 편리하게 이용했다. 그런데 여행 중 만나는 랜트카가 대부분이 흰색이다. 흰색은 사람들 호불호가 가장 적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랜트카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 차 살 때 색상 고민하게 생겼다.
시간 때우러 옆의 하이마트에 가서 아이쇼핑도 하다가 거의 두 시간 기다려서 들어갔다. 11시 쯤 되었으니 이게 점심이다. 식당 좌석은 50석 정도 된다. 코로나 방역 지침 지키느라 식탁 건너건너 앉히니 사람들이 더 밀린다.
옆 테이블에서 딸인것 같은 젊은 여자가 한참 열올리며 설명하고 늙은 아비는 고개만 끄덕거린다. 이게 얼마나 정성들여 끓여야 되고, 맛있는 거라고 떠든다. 그리고 좍, 가이드 마냥 일정 브리핑을 한다. 이제 여행의 주도권은 아이들 손에 넘어 가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일정 다 잡아 놓고, 우리더러 따라 오라고만 한다. 세월이 흘러간 것을 확인하는 여행이 되고 있다.
음식은 빨리 나온다. 의자에 앉자마자 반찬과 해장국 뚝배기를 가져다 놓는다. 집사람이 뚝배기를 들여다보고 실망한다. 이건 국이 아니자나. 우린 시원하게 넘어가는 얼큰한 해장국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사리 죽이다. 하루 종일 고사리를 끓여 이렇게 죽처럼 만들었으니 얼마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냐며 아이들이 여길 편든다. 먹어보란다. 다른데 가면 이 맛이 안난다고 한다. 아마 얘들이 다른데서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하는 말인 것 같다. 마지막날 몸국 집에 이와 똑 같은 메뉴가 있고, 사람들이 더러 시켜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국을 뜨니 가늘게 퍼진 고사리 살이 건져지는 것으로 보아 고사리를 갈아서 만든 죽은 아니다. 가늘게 찢어져 풀어진 소고기 양지살이 섞여 있다. 고사리와 소고기 양지를 큰 솥에 넣고, 오랫동안 끓여 죽처럼 만든 다음 뚝배기에 그냥 퍼 주기만 하면 되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나눌 수 있는 장터 음식이다. 해장국이라고 하니 새벽에 술꾼들이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밥을 말기에는 국이 좀 뻑뻑하다. 쌀이 귀한 제주도에서 밥을 말지 않아도 속이 든든하도록 여기에 흔한 고사리 잔뜩 넣어 만든 제주도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음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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