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은 몽골 독립기념일이라 휴일이다. 그래서 금에서 월 까지 나흘 간의 연휴를 만났다. 서울 같았으면 별 거 다 했을 건데, 여기서 혼자 궁상맞게 다니는 것도 그렇고, 방구석만 맴 돌고 말았다. 1월 1일은 새해 첫날이라고 해돋이 기차를 탄다고 예고가 되어 있었다. 말일 날 저녁에 투무르에게서 문자, 전화로 새벽 5시에 데리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
새벽잠 설치다 자리 털고 나갔다. 예정시간 보다 좀 늦게 울란바타르 역에 도착했다. 선배단원들이 나오고, 전체 인원이 18명이나 된다. 그런데 새로온 사람들을 반기는 기색이 없다. 그냥 각자 기차에 오른다.
기차는 러시아 대륙횡단 열차와 구조가 같은 침대 열차다. 차량 하나에 10개의 방이 있고, 각 방마다 4개의 침대가 있으니까, 객차 하나에 4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해맞이 관광열차라 열차내부에 풍선과 은박지로 장식을 해서 제법 모양을 냈다.
운행 중에 몽골 가요를 틀어 분위기를 돋우려고 애쓴다. 러시아 인처럼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 제복 차림으로 승무를 한다. 차량 입구에서 표를 확인하고 승차시킨다. 기차가 출발하고 좀 있자, 승무원들이 샴펜을 돌린다. 설날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라는 것인가 보다. 얼마 후 식사로 호쇼르 3개 들은 비닐봉지를 나누어 준다. 호쇼르는 몽골 전통음식으로 기름에 튀긴 만두다. 양고기 속을 넣은 튀긴 만두인데 맛이 느끼하다. 샴펜 안주 삼아 두 개를 먹고 나머지는 올 때 처리했다.
기차가 울란바타르 외곽으로 빠져 나가는데 도로에 기차를 따라 열지어 가는 차량 행렬이 보인다. 저 사람들도 아마 우리처럼 해돋이를 보러 가는가 보다. 차 창 밖에 어렴풋이 먼동이 밝아 온다. 초원을 달리면서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것도 색다른 감정이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열차가 한 시간반 정도 달렸는데 복도에서 승무원이 ‘우이아 어라이브 프리패어’ 하면서 외친다. 얼마 후 기차가 간이역에 섰다. 모두들 내리는 분위기다. 따라 내리는데 승강장이 없어서 내리기가 쉽지 않다.
철길 따라 긴 열차 대열을 따라 가니 한 쪽 들판에 나무를 원뿔형으로 세운 망우리 불집이 보인다. 불집이 3개 있고 그 주위를 견인줄로 사람들 출입을 차단하고, 경찰들이 줄을 잡고 경계를 서고 있다. 규모를 보니 정부 당국의 공식적인 행사인 것 같다.
잠시 후 불집이 점화되고 해맞이 축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불을 보며 기념 찰영을 하기도 하는데, 몽골인들은 땅과 불에 술을 뿌리며 축수한다. 모닥불이 절정에 이르자 저 넘어 지평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연단에 정치 지도자인 듯한 사람들이 올라가 두 명 정도 연설하고, 이어서 머루호르 연주와 노래 공연이 이어지고, 우리의 오광대 노릇과 비슷한 탈춤 공연이 광장에서 벌어진다.
드디어 해가 떠오르자 사회자가 ‘우라’를 선창한다. 몽골인들은 두 팔을 올려 벌리고 ‘우라’를 제창하여 격정적으로 해맞이를 한다. 정동진이나 산마루에서 조용히 자기 소원을 빌며 해를 맞는 우리와는 다른 풍경이다. 영화 전쟁과 평화에서 러시아 군대가 나폴레옹 군대를 최후 공격할 때 ‘우라’를 외치며 돌격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런 모습은 여기가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 이럴 수 있겠고, 아니면 북방 동토에 사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만세와 용기를 북돋우는 외침이 ‘우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행사장을 돌며 사진 몇 장 찍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꺼진다. 아뿔싸 배터리가 낮은 온도에서 빨리 소모되고 말았다. 지리산 겨울 능선 종주하다 당했던 일이 생각난다. 영하 30도에 달하는 저온에서 핸드폰을 켠 채 30여분을 들고 다녔으니 어쩔 수 없다. 정작 중요한 사진을 담지 못해 속상하다. 다음에는 꼭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녀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어디가면 빈몸으로 덜렁 나가는 습관은 어쩔 수 없다. 좀 있자니 발이 얼기 시작한다. 기차 열을 세어 보았다. 20량이나 된다. 그리고 주변에 승용차가 수 백대는 모여 있다. 어림잡아 5천명 이상이 모인 해맞이 행사다. 저 건너 언덕위도 불이 보인다. 거기도 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나 보다. 추위에 더 버티지 못하고 기차로 돌아왔다. 객실에 들어오니 동료들이 들어온다. 돌아오는 동안 그들은 내내 쪽잠을 자며 뒤척거린다. 눈 덥힌 동토를 보며 울란바타르로 돌아 왔다. 역에 내리면서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 가 되 버렸다. 이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새해 첫날 만났는데, 서로 아무 인사도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나도 셔틀에 올라 숙소로 돌아 왔다.
이렇게 홀로 새해를 맞는 것이 처음인가 절간 같은 숙소에 무장 풀어 높고 나니 마음이 허해지려 한다 다짐을 해야겠구나
‘나만의 시간이다. 헛되이 가면 안 된다’
새 해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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