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의 여름은 비와 함께 찾아온다. 바람은 찬 기가 덜해지고 세기도 줄어들었다. 지금 부터는 태양의 계절이다. 바람 없는 한 낮의 기온은 삼십도 중반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공기는 건조해서 실내는 시원하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에어컨 선풍기 없이 여름을 견딘다. 해질녘에 그늘이 생기면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한 밤중까지 왁자지껄 하다.
6월 1일(토)
오늘이 국제 어린이 날이다. 1925년에 스위스 제네바의 아동복지를 위한 세계회의에서 지정하였다. 몽골인들은 이 날에 어린이날과 어머니날을 같이 기념한다. 그래서 가정 축복의 날이 된다. 광장에서는 기념행사가 열리고, 주변에는 난장이 차려진다. 공원에는 분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가로수들은 녹음이 제법 짙어졌다. 광장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드디어 여름이다. 봄의 시련을 이겨낸 생물이 살찌는 계절이다. 오늘 하루 따스한 햇살아래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오후에 난데없이 폭풍이 몰아치고 소나기 구름이 몰려온다. 천둥 번개와 소나기가 순식간에 사람들을 흩어버렸다. 아직 봄이 남아 있나보다.
6월 6일(목)
밤새 광풍에 창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제 저녁 먹고 나서 델구르(가게)에 갈려다가 포기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심한 바람에 실내 공기가 서늘해졌다. 파르는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장판도 켜지지 않는다. 썬득썬득해서 좀체 잠이 들지 않는다. 추리닝을 꺼내 입고 다시 누었다. 뒤척이다 목이 마려 눈을 떴다. 새벽빛이 환하다. 창밖의 전기 줄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내가 잠을 자기는 했구나.
6월 7일(금)
하루 종일 바람이 세다. 사막에 바람이 일면 모래바람이 된다. 하지만 공기는 시원하다. 이제 봄은 지난 것 같다. 어제는 몽골인들에게 길일이다. 몽골 남자 아이가 세 살, 여아는 네 살이 되면 머리를 깎는 의식을 한다. 아기 적 미영털을 밀어 내고 새 머리를 받는 의식이다. 우리나라의 돌잔치처럼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하고 축하한다. 롭슨의 막내 아이 아무카의 머리 깎는 잔치를 해서 기관 사람들 모두 가서 축하를 했다. 그런데 롭슨이 그 날로 기관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월급 때문이다. 그에게는 대학생 둘, 고등학생 하나, 어린아이 모두 네 명의 아이가 있다. 현재 몽골에서 일 년 대학 등록금이 사백만투그릭 정도 된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 교육비에 허덕인다. 좀 더 나은 벌이를 찾는다고 한다.
훈누 에어 사이트에서 울란바타르-을기 왕복 티켓을 사려고 했다. 복잡한 여권 정보를 입력하고 결재 카드를 한방크로 지정하고 카드 번호, 만료 날짜, 시브이 번호를 입력하고 지불을 눌렀다. 한방크에서 내 전화로 결재 번호가 전송되어 올 것이다. 그런데 전송되는 전화가 801**** 으로 되어 있다. 내 번호는 861**** 이다. 한방크에서 계좌 만들 때 전화번호가 잘못 입력된 것이다. 정정하려고 생샨드 한방크 지점에 가서 요청했다. 은행 매니저가 정정 방법을 모른다. 한 시간 정도 컴퓨터와 씨름하더니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달란다. 복사본에 싸인해서 팩스로 본점에 보내 정정하겠단다. 됐거니 하고 집에 와서 다시 주문했더니 마찬가지다. 한방크 울란바타르 한국인 대상 지점이 서울 거리에 있다. 그곳 은행원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한방크에 가서 전화로 연결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9시 한방크 지점에 가서 전화를 은행원에게 바꿔줬다. 은행원이 한참 시도하더니 됐다고 한다. 믿고 기관에 가서 다시 시도했다. 마찬가지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 뱅크 접속했다. 역시 회원 정보에서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고 있다. 내가 그걸 바꾸고 다시 시도했다. 역시 안 된다. 울란바타르 지점에서 전화가 왔다. 인터넷 뱅킹으로 들어가 바꾸란다. 내가 이미 완료하고 다시 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마 중계 서버의 정보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티켓 구입은 지금 해야 한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 카드를 빌리기로 했다. 사무실 직원에게 돈을 이체하고 그의 카드 번호를 입력하려고 했더니 마지막 시브이 번호가 그의 카드에 없다. 아뿔싸 이것도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다른 직원에게 비용을 이체했다. 그의 카드로 결재가 되었다. 비행기 티켓 사는 일로 온 동네를 뒤 쑤셔 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6월 15일(토)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고비 사막에서 우산을 쓰고 길을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방안에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늘을 보니 하얗게 구름이 덥혀 있다. 그런데 전기 줄은 흔들리지 않는다. 옅은 층운이 깔려 있는데 바람은 잔잔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떠들던 생각이 난다. 센 바람에는 적운, 약한 바람에는 층운이다. 구름이 드리워져 비는 내리는데 바람은 없다. 점심때쯤 장보러 나가는데 빗방울이 보인다. 점점 더 잦아진다. 우산을 가지고 나갔다. 우산에 주룩주룩 빗방울이 부딪친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소리다. 우산을 쓰고 걷는 맛이 좋다. 마치 한국에 온 것 같다. 제법 많은 물이 떨어졌다. 어느새 길바닥에 고여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내가 고비에 2년이나 있으면서 이런 경우를 처음 본다. 여기서는 하늘에 낮은 구름이 비쳤다하면 강풍이 몰려온다. 센 바람에 우산을 펴지도 못한다. 비가 오면 그냥 맞는다. 우비도 필요 없다. 비가 몇 방울 떨어지지도 않지만 건조해서 바로 마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비 사람은 비 오면 그저 감사하며 비 맞고 다닌다. 지구 기후가 바뀐다더니 고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6월 18일(화)
요즘은 집안에 거의 전등을 켜지 않고 산다. 해는 아홉시가 다 되어야 서편 지평선에 닫는다. 시간은 한 밤중이 되어 가는데 날은 환하다. 아파트 앞 놀이터와 공원 광장은 한 참 사람으로 북적인다. 사막에서 강렬한 햇빛 때문에 낮에는 밖에 나가지 못한다. 해질 무렵 생기는 그늘은 고비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저녁 시간에 밖에 나가 시원한 바람 맞으며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본다. 고비 사람들은 이것을 최고로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에 저녁에 일찍 자야 한다. 열시 전에 자리에 들어야 컨디션이 제대로 유지된다. 저녁 먹고 나서 TV 조금 보다가 방안이 어둑해질라하면 잘 시간이다. 밖은 환하고, 아이들은 와글거리고, 나는 잠자리에 들어간다.
6월 19일(수)
유치원은 이달 1일부터 방학에 들어갔고, 소르고일(학교)은 이번 주부터 방학이다. 창 너머 2번 학교에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다. 소르고일은 초중고등학교가 모여 있는 12학년제다.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절반 이상이 시골로 돌아간다. 그리고 선생들도 방학기간에 급여가 70%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시골로 내려가거나 울란바타르에 가서 다른 일을 한다. 운이 좋아 한국 비자가 나온 사람은 땡 잡는다. 방학 동안 한국 가서 막노동이라도 하면 일 년 벌이의 절반 정도는 벌어 온다. 대부분 직장에서도 이 기간에 일꾼들에게 휴가를 준다. 그래서 생샨드가 조용해진다. 한글 교실에도 나오는 사람이 없다. 덕분에 나도 한가해진다.
6월 22일(토)
21일 코이카 안전집합 소집 훈련으로 울란바타르에 올라왔다. 생샨드에서 북쪽으로 200km 정도에 있는 처이르를 벋어나자 들판이 푸른 옷을 입어 가고 있다. 울란바타르를 둘러 싸고 있는 투브(중심) 아이막 지역은 산악지형이라 구름이 많고 강수량이 풍부하다. 거의 매일 비가 내려 숙소 앞 셀비 강에 물이 제법 불었다. 아이들은 물놀이 하느라 신이 났다.
이번 비상소집에서도 교통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21일 나와 약속한 택시 운전수가 오지 않았다. 11시쯤 전화하니 울란바타르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승객 4명이 모아지자 먼저 약속한 나를 제쳐두고 날라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페이스북에 다시 광고해서 택시를 잡았다. 4명 요금을 주기로 하고, 혼자 타고 왔다. 오늘은 몽골 재난방재청에 가서 안전 교육을 하고 소집 훈련 평가를 했다. 작년과 똑 같은 건의를 했다. 사무소 측에서는 긴급 사태를 가정한 대피 훈련이라 단원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개인이 차량을 수배하여 이동하는 것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와 계약한 택시 운전수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위반했다. 만약에 실제 상황이라면 나를 울란바타르로 데려다 줄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훈련은 하나마나 한 것이 된다. 그래서 공적인 기관에서 이동 차량을 준비하여 해외 주재원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는 한다. 하지만 믿겨지지 않는다.
6월 30일(일)
27일부터 친구 부부와 같이 고비의 관광지를 여행하였다. 몽골에서 유월에는 비가 많다. 울란바타르와 인근 지역은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돈드 고비와 우뭉 고비는 서쪽에 산악이 있어서 구름이 제법 있고, 지역에 따라 소나기가 내리기도 한다. 여행지는 퇴적지형이 드러난 ‘차간 소브르가’, 빙하 계곡 ‘열린 암’, 사구 지역 ‘홍호르 일스’, 황토 침식 지형 ‘바얀 자그’, 암석 지형 ‘바그 가자린 촐로’를 둘러보았다. 다섯 곳 모두 지질적 특색이 독특하여 가볼만한 곳이다. 마침 방학 중이라 한국 학생들이 많이 와서 심심찮게 다녔다.
<저작권자 ⓒ 소금바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몽골생할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