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를지 국립공원은 울란바타르 인근에 있어서 몽골에 오는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위치도 울란바타르 시에 속해 있고, 몽골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강과 산, 들이 펼쳐져 있어서 경치도 좋다. 몽골인들도 주말 휴식으로 태를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도 울란바타르에 출장 나온 김에 동료들과 테를지를 찾았다.
몽골인들의 야외 나들이 음식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것이 허르헉이다. 허르헉은 양고기를 야채와 함께 압력솥에 푹 쪄내는 음식이다. 재료도 단순하고,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 좁은 게르 안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중요한 재료(재료로 보기 어렵지만)가 ‘촐로(자갈)’다. 끓는 물에 벌겋게 달궈진 촐로를 넣어, 물이 튀는 순간에 고기를 넣어야 고기가 잘 익는다.
아침 먹고 나서 산책 겸, 허르헉에 들어갈 촐로를 주우러 강가에 나왔다. 태를지는 울란바타르를 가로 지르는 톨강 상류 지역이다. 여기는 강폭이 넓고 유속이 제법 빠르다. 요즘 비가 자주 와서 물이 제법 불어나 있다. 강가에서 촐로를 고르다가 물 속의 촐로를 주우러 들어가려고 했더니 동료가 말린다. 강 속의 촐로를 빼 내오면 안 된다. 그러면 네 몸이 아프게 된다. 강과 산과 숲에는 주인이 있다. 함부로 무언가를 가지고 나오면 해를 입는다고 경고한다. 들에 사는 그들이 자신들이 사는 마당을 둘러 싸고 있는 자연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생활 속의 규범이요 믿음이다. 자연보호의 어떤 구호보다 진솔하게 들린다.
게르로 돌아오다가 하얀 에델바이스를 만났다. 꽃 하나를 꺽어 보여 주었더니 이건 연인에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에델바이스를 ‘차간 올 체체그’라고 한다. 차간은 흰색이고, 올은 영원, 체체그는 꽃이다. 그러니까 영원히 햐얀 꽃이 에델바이스다. 몽골인들은 연인에게 사랑의 표시로 에델바이스를 선물한다고 한다. ‘우리 사랑 영원히’ 티 없이 맑게, 오랫 동안 가자는 의미다.
게르 앞이나 사람이 다니는 길에 질경이가 널려 있다. 여기 질경이는 잎이 약간 가늘고 길쭉하다. 추운 지방인 만큼 키는 작다. 여기 사람들은 질경이를 ‘타븐 살라’라고 한다. 타븐은 다섯이고, 살라는 갈래를 말한다. 나무 가지에서 줄기가 갈라진 곳을 ‘살라’라고 한다. 길을 가다 갈라진 길이 나오면 그곳을 살라 라고 한다. 단잔라브자는 ‘나무의 열매는 살라에서 비롯된다’고 노래했다. 열매에 필요한 양분은 살라에서 나온다. 너희가 비록 떨어져 살지라도 한 갈래에서 나온 것이니 서로 좋게 지내라는 교훈이다.
몽골 여자 아이들이 ‘타븐 살라’ 잎을 따서 하는 놀이가 있다. 잎을 따서 양 끝을 잡고 반으로 자르면 다섯 개의 줄기가 끊어지면서 잎은 둘로 나뉘어진다. 이 때 갈라진 잎에 줄기 남은 것이 뽀족하게 튀어 나온다. 이 때 튀어 나온 줄기 수를 가지고 자기가 가질 아이를 점친다. 그러니까 줄기가 하나 튀어 나오면 ‘어! 나는 아이가 하나 있겠네!’ 한단다.
게르 옆에 인진쑥과 비슷한 무성한 풀 무더기가 있다. 새벽에 말 한 무리가 여기를 쓸고 지나갔는데 이 풀무더기는 그대로 있다. 동료가 풀을 만지면 따갑다고 주의를 준다. 잎을 따서 보았더니 쑥과 비슷할 뿐, 가시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팔을 걷고 손을 풀 속에 넣어보란다. 풀 속에 손이 들어가는 순간 벌에 쏘인 것처럼 따갑다. 손을 급히 빼내 풀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가시는 보이지 않는다. ‘할가애’라는 이 풀은 화학약품을 쏘아 동물의 접근을 막는다. 식물의 자기 보호 수단이다. 독침을 쏘는 ‘할가애’ 무더기는 다른 풀에 비해서 무성하게 잘 자란다. 다른 풀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동물에게 먹이가 된다. 하지만, 이런 풀은 동물에게 자신의 씨앗을 운반하게 한다. 그래서 그 풀은 들에 퍼져서 초원을 뒤덮는 번성하는 풀이 되고, 할가애는 개체수가 적어 어쩌다가 보인다. 들의 초목들이 자신과 유전자를 지키는 수단이 다르다. 하나는 남에게 인색하고 자신만 살찌운다. 다른 풀은 후하게 주어 먹이가 되지만 후손이 넓게 번성한다. 하찮아 보이지만 곰곰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자연의 순리다.
동료가 몽골 노래 하나를 들려준다. 어린 아이가 또랑또랑 하게 부른다. 동요처럼 들리는데 어른들이 많이 듣는다고 한다. 우리말로 ‘그냥 웃어’라는 노래다. 노래말이 참 예쁘다. 자연 속에 사는 이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연 그대로에 있다는 노래다. 한번 들어보고 몽골인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껴보자.